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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전도서 - 버릴 때와 거둘 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0.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전도서 3:1,5)

전도서 3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우리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마치 내 인생에도 언젠가는 좋은 때가 온다는 위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 결코 인간 중심적인 위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전도자는 천하만사의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때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인간에게 한 번도 맡긴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시간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버스를 기다릴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내가 타려는 시간에 딱 맞춰 버스가 오면
“오늘은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시에 정확하게 온 버스가, 내가 타려는 시간과 맞지 않으면 우리는 화를 냅니다. 버스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인데, 우리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 이후의 사고방식입니다. 천하만사의 때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단순히 규칙을 어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판단의 주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자기 손에 쥐려는 시도였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내가 때를 정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나 ‘때와 법을 고치려’ 합니다.

다니엘서가 말하듯, 사탄의 본질은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를 변개하려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자기의 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롯을 통해 아기들을 죽이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귀신들은 외쳤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멸하러 이 때에 왔나이까?” 그들은 때를 알고 있었지만, 그 때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때를 알려고 합니다. 언제 회복될지, 언제 문제가 풀릴지, 언제 역사가 끝날지, 그러나 예수님은 그 질문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미래 정보를 주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이미 끝난 사건, 곧 십자가를 증거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재림의 날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때를 알려고 하는 신앙은, 실은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진짜 믿음은 때를 맡기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표면적으로 보면 매우 상식적인 말입니다. 집을 지을 때 쓸모없는 돌은 버리고, 필요한 돌은 모읍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성경은 계시가 아니라 처세술이 됩니다.

성경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시편 118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사람들은 건축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의 집을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붙잡고,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립니다. 관계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심지어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아가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 때, 그를 버렸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버림받은 돌로 새로운 집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버린 예수를, 하나님은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마침내 아들까지 죽인 농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죽인 아들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분은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버림받음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 버림받음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버림받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심으로,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다시 거두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버림받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외면당할 때, 쓸모없다고 여겨질 때, 실패자로 낙인찍힐 때, 우리는 그 시간을 저주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때도 하나님의 때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으셨을 때 가장 깊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성도는 버림받는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우리는 독립된 벽돌이 아닙니다. 모퉁이 돌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제자리를 찾습니다. 지금 이해되지 않는 시간, 버려진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거두실 돌을 이미 정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이 완성될 때, 이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날을 계산하지 않고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버릴 때와 거둘 때를 정하시는 분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거두어지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며 삽니다.
“주님, 제 때를 제가 정하지 않겠습니다. 버림받는 것 같아도, 당신의 손에 제 삶을 맡깁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이며, 십자가가 완성한 신앙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