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1~8)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의 이 한 문장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다 때가 있어”라는 말로 이 구절을 가볍게 소비합니다. 마치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잘 준비하면, 인생의 좋은 때가 반드시 찾아올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비극을 다룹니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IMF는 단순한 경제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직장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고, 인생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공포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위기 속에서 신음할 때, 그 위기를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들은 오히려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사건, 같은 때였지만 어떤 이에게는 파멸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때를 미리 알 수는 없을까?”이 질문은 경제 시장에서만 나오는 질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점집을 찾고, 사주를 보고, 운세를 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는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원화소복(遠禍召福), 화는 멀리하고 복은 끌어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때는 인간의 계산표 위에 올라 있지 않습니다. 때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형통한 날을 좋아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몸이 건강하고, 미래가 선명해 보일 때 마음은 가볍습니다. 반대로 곤고한 날은 피하고 싶습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관계가 깨지고, 이유 없이 불안한 날들입니다. 그런데 전도서는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왜 하나님은 굳이 형통과 곤고를 섞어 두셨을까요? 왜 인생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내 인생의 미래가 완전히 내 손에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는 불필요해지고, 의지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없는 당당한 인생’을 살겠다는 욕망이 때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의 깊은 뿌리입니다.
전도서 3장 2절은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우리는 태어날 때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원하지 않았어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은 가정, 원하지 않은 환경에서 삶을 시작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태어남은 선택하지 못하면서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 혹은 죽음을 통해 마지막 자율성을 확인하려는 철학자들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이미 죄로 죽은 자의 또 다른 죽음일 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참으로 날 때와 죽을 때를 아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언제 태어나실지, 왜 태어나실지, 어떻게 죽으실지, 언제 다시 살아나실지를 아셨습니다. 그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었고, 그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 구약의 모든 역사는 이 ‘때’를 향해 흘러왔습니다.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헬라, 로마,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는 단지 인간사의 반복이 아니라, 메시아가 오실 무대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에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명절을 피하려 했지만, 죽을 때를 정하시는 분은 그들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시기 위해 그날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
세상은 말합니다. “사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말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할 것과,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그래서 복음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복음은 한 분의 생애인 것입니다. 날 때, 죽을 때, 다시 살아날 때를 스스로 아시고 이루신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함께 살아났으며,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입니다(엡 2:5~6).
이제 전도서의 “날 때와 죽을 때”는 더 이상 허무한 인생의 관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을 아는 자에게, 이 말씀은 소망의 시간표가 됩니다. 우리는 단지 태어났다가 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날 때와 죽을 때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자기의 운명을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생사의 비밀을 알고 사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생명으로 옮겨진 자로 오늘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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