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도서 2:16~17)
전도서 2장은 인간의 지혜가 끝까지 도달해 본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가 결국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흔히 듣는 말입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반적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종종 듣는 예화가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부처를 찾아가면, 부처가 이렇게 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적 없는 집안에서 감나무 가지를 가져오너라.” 그 말을 따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그런 집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예화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을 ‘지혜’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세상의 지혜도 죽음을 일반이라 말하고, 성경도 죽음을 일반이라 말한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전도자는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모두 살펴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즐거움도, 쾌락도, 성취도, 명예도, 그리고 지혜까지. 그러나 그가 도달한 결론은 뜻밖에도 허무였습니다.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전의 일일 뿐입니다.”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습니다. 자신도 앞선 왕들이 했던 일을 반복했을 뿐이고, 뒤에 올 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노력과 성취가 얼마나 피곤한지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허무에 굴복하게 하셨기에,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그 허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삽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의 크기와 형편을 막론하고, 끝없이 더 해야 할 일들을 만들어 내며 스스로를 지치게 합니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표어와 실천사항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며, 마치 그것이 의미를 만들어 줄 것처럼 분주해집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말합니다. 그 모든 분주함이 결국 헛됨이라고 말입니다.
전도자는 분명히 인정합니다.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낫습니다. 빛이 어둠보다 분명히 낫듯이 말입니다. 지혜자는 앞을 보고 가고, 어리석은 자는 어둠 속을 헤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 보아야 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지혜롭게 살아도 죽고, 어리석게 살아도 죽습니다.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역사 속에서도 잊힙니다. 시편 49편은 이 사실을 더욱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무지한 자도 죽으며, 쌓아 둔 재물은 결국 남의 것이 됩니다. 존귀해 보여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죽음 앞에서, 무엇이 참된 지혜일까요?
성경은 죽음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죽음이 같은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옮겨졌습니다. 모세는 기력이 쇠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습니다.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려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특별한 별세들을 통해 한 가지를 증언합니다. 해 아래의 일반적인 죽음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증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증언한 것은 예수님의 ‘별세’, 곧 출애굽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함께 끌어안고 죽음을 통과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은 자로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을 이유가 없는 분이 죽으셨습니다. 이 죽음 안에 참여하는 자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율법에 대하여 죽고, 자기 의에 대하여 죽고, 선악 판단의 주체로 살아가던 자신이 죽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의 삶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땅의 것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위의 것을 바라보는 삶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지만, 장차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소망을 품고 삽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을 더 닮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전도서가 우리를 허무로 몰아넣는 이유는 절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게 하여, 죽음을 넘어서는 참된 지혜로 우리를 이끌기 위함입니다.
일반적인 죽음이 끝이라고 믿는 세상의 지혜와 달리, 성경의 지혜는 말합니다. 죽음 너머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립보서 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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