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도서 1:9)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사람은 끊임없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소유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발견한 해 아래 인생의 본질입니다. 보아도 부족하고, 들어도 부족하고, 얻어도 부족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해도, 아무리 풍성한 문화를 누려도, 아무리 지식을 늘려도 인생은 만족이라는 단어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전도서 1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기술은 달라지고, 문명의 형태는 달라지고, 환경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본질은 아담 이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죄를 짓는 방식은 달라져도 죄의 본질은 그대로이고, 우상을 만드는 방식은 현대화되었어도 우상숭배의 심장은 동일하며, 자기중심성, 불만족, 탐심은 시대를 넘어 늘 반복됩니다. 전도자는 이것을 정확히 보고 말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는가?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해 아래란 곧 아담 아래, 죄 아래, 율법 아래, 죽음 아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인생은 아무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 그 끝은 한 가지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이를 증명합니다. 에녹만 제외하고 모두 “죽었더라”로 끝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강성해도, 아무리 지혜로워도, 아무리 부유해도 인생은 결국 죽음 아래 있기 때문에 새롭고 영원한 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허무한 족보 속에 단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해 아래 살았으나 해 아래의 결론(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에녹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므두셀라의 계시를 통해 종말의 심판을 깨달았고 그 삶 전체가 하나님께 이끌렸습니다. 에녹은 세상에서 보면 짧게 살았고, 다른 이들과 달리 천년을 살지 못했으며, 세상적으로는 허무한 죽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니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세상에 오래 사는 것이 새로움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새로움입니다. 해 아래에서 새로운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뿐입니다.
해 아래 인생은 왜 새로움을 갈망하는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인간 자체가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아벨(헤벨)이라는 이름이 “허무”라는 단어와 동일한 것처럼 아담 이후 인생은 스스로 허무합니다. 그러나 이 허무를 생명으로 채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허무로 채우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다니지만 그것 역시 반복일 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분명 그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다시 개혁을 외칩니다. 왜입니까?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인간 중심으로 기울어지고, 은혜로 시작한 믿음은 율법으로 치우치며, 복음은 인간적 열심으로 가려지고, 예배는 종교적 형식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돌이킴(개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새로워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선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해 아래에서 해 위로 이끄는 말씀입니다. 해 아래에서는 새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 위에서는 새것이 있습니다. 그 새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해 아래에서는 새것이 없지만 해 위 곧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죽음 아래 있는 인생이 생명 아래 있는 존재로 바뀌고, 율법 아래 있는 인생이 은혜 아래로 옮겨지고, 아담 안에서 반복되는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의 삶으로 들어갑니다.
해 아래 새것을 바라는 허무한 갈망을 버리고 해 위에서 주시는 참된 새로움을 붙드십시오. 성취가 아니라 은혜를,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반복되는 인생이 아니라 새 창조의 삶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에녹처럼 종말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 길만이 해 아래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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