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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아가

아가서(22) - 무조건적 사랑의 비밀, 사랑의 이유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16.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아가 7:10~13)

어느 철학자가 평생 사랑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수십 권의 책을 썼고, 사랑의 조건과 형태와 원리를 분류하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르러 그는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말했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이상한 고백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정직한 말일지 모릅니다. 사랑은 인간의 지혜가 끝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이 아름다워서,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주어서, 사랑은 늘 상대방의 어떤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흔들립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의 비극은 대개 여기서 옵니다. 사랑받을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순간, 사랑도 함께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가서의 여인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이 짧은 고백 안에는 우리가 아는 사랑의 논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신랑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자신의 외모에서, 자신의 능력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그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속해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습니다. 보통은 사랑받을 이유가 있어서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인은 내가 그에게 속한 것, 그것이 사랑의 이유라고 말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고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청년이 되어서는 집을 나가 연락도 끊었습니다. 몇 년 후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는 빈털터리에 병까지 든 상태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품어줄 겁니까?"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니까요." 더 이상의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착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 소속이 사랑의 전부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감동적인 부정(父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문법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것을
"비밀"이라고 불렀습니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 그것이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비밀의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지혜를 모아도 이 비밀에 닿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사랑이 인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조건 없이 먼저 달려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라는 말이 가슴을 칩니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가 있었고,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건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였습니다. 왜입니까? 자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속이 사랑의 근거였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은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자와 함께 포도원에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인이 그 꽃을 피우겠다거나 그 열매를 맺겠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보러 가자는 것입니다. 이미 피어나고 있는 것들을 함께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속한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가꾸고, 더 아름다워지려 애쓰고, 향기를 내뿜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이미 와 있고, 그 사랑 안에서 함께 걷는 것입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헛됨'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사랑을 알지 못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수고를 앞세웁니다. 더 잘하면, 더 노력하면,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수고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공허함입니다. 사랑은 원래 수고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향기는 이미 뿜어지고 있습니다. 열매는 이미 쌓여 있습니다. 여인이 만들어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가 쌓아 둔 것입니다. 사랑이 먼저 와서, 사랑이 먼저 준비해두었습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향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것, 그것이 향기가 되고 열매가 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 짊어지던 수고의 짐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자유입니다.

세상은 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방식은 언제나 먼저 일하고 그 보상으로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주님께로 향하는 이유는 보상이 아닙니다. 끝나지 않는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허물에도 변하지 않는 그 사랑에 이미 속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받는 이유는 당신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이유입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