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5:1~12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아침은 하루의 첫 단추입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그다음이 자연스럽듯, 하루의 시작이 하나님께 맞물리면 남은 시간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시편 5편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아침에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5:3)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디를 보고 시작하나요? 알람, 메시지함, 일정표… 아니면 주님의 얼굴?
예수원에서 시작하던 그 맑은 아침처럼, 다윗은 매일의 문지방에서 하나님을 먼저 만납니다. 전해지는 루터의 일화처럼 “너무 바빠서 더 오래 기도해야 한다”는 역설을 아는 사람은, 바쁨과 피곤을 핑계로 기도를 미루지 않습니다. 아침은 하루의 일부가 아니라 하루 전체를 재정렬하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뿐 아니라 말이 되기 전의 숨과 한숨까지 들으십니다. 3절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는 말에는 “기대를 품고 지켜보다”라는 파수꾼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제물을 정돈하여 올려놓다(제단에 배열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곧, 다윗은 아침마다 마음을 제단 위에 정돈해 올려놓고, 하나님이 그 위에 불을 붙이실 것을 기대하며 지켜봅니다. 아침 묵상은 성급한 해결책을 강요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올려놓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훈련입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아침에 우리가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세상 뉴스와 업무 알림은 우리 마음을 분주와 비교와 분노로 가득 채우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면 마음의 초점이 다시 맞춰집니다. 거룩은 우리를 움츠리게 하려는 공포가 아니라, 오염된 마음을 씻는 맑은 기준입니다.
다윗은 “거짓, 피 흘림, 속임”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말합니다. 그 말은 “나는 그런 마음과 말에서 오늘 떠나겠다”는 결단입니다. 아침 기도는 하루의 언어를 정화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내가 사용할 말, 회의에서의 한 문장, 가족에게 건넬 짧은 한마디 말의 출처가 거룩이 되게 하십시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헤세드)에 힘입어… 예배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근거로 성전에 들어갑니다. 아침에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도 자기 관리의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그래서 그는 곧이어 이렇게 구합니다.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하루가 시작되면 수많은 길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다윗은 의의 길이 눈앞에 곧게 드러나기를 구합니다. 아침 묵상이 끝나면 해야 할 일 자체가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순위, 태도, 방식이 달라집니다. 같은 미팅이라도, 같은 집안일이라도 하나님의 의를 향한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무덤은 겉으로 덮였어도 안은 부패가 가득합니다. 다윗은 아침에 이 사실을 기억합니다. 하루 동안 들려오는 말 속에 아첨과 과장, 선동과 비난이 섞여 있음을 알고 분별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응징하기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소서”라고 맡깁니다. 아침 기도는 정의감으로 가장한 분노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의에 사건을 위탁하는 시간입니다. 그 위탁이 마음을 가볍게 하고, 복수심 대신 선한 창의성을 되돌려 줍니다.
마지막은 환호입니다.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피난처가 확보된 사람은 싸움터에서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승리의 안전지대가 어디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2절은 이 시편의 보석 같은 마침표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은혜는 추상적 호의가 아닙니다. 둘레를 따라 도는 호위대입니다. 하루 내내 우리를 감싸며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 같은 은혜, 이 확신이 아침에 우리를 일으킵니다.
아침이 하루의 전부가 되게 하는 간단한 방법은 복잡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반복 가능한 단순함입니다.
<3분 침묵> 알람을 끄고 3분만 앉아 호흡을 고릅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합니다.
<3분 감사> 어제의 작은 은혜 3가지를 말로 주님께 이야기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초점을 맞춥니다.
<4분 말씀> 시편 5편처럼 짧은 본문을 천천히 소리 내 읽고, 마음에 와 닿는 한 구절을 오늘의 문장으로 삼습니다. (예: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호위하시리이다.”)
<5분 기도> 오늘 해야 할 일 3가지를 주님 앞에 ‘정돈하여’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주님, 이 중 무엇이 먼저입니까? 누구에게 어떤 말로 대할까요?” 질문하고 조용히 1분을 멈춥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한 줄로 정리하여 적습니다.
<1분 파송> “주님, 오늘 저는 피하는 자, 기뻐하는 자, 의의 길을 걷는 자로 살겠습니다. 아멘.”
총 16분으로 짧지만 하루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합니다. 아침은 하루의 일부가 아니라 하루 전체의 해석 키입니다. 오늘도 첫 단추를 주님께 채우십시오. 그러면 분주한 날도 구원의 날로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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