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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얍복강의 씨름, 그 벗김의 은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2~28)

우리는 인생을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여정이라고 여깁니다. 오늘의 선택과 행동이 내일을 결정하고, 내가 이룬 성취가 내일의 삶을 구성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시간관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것은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내려오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모든 것을 정하시고, 완성된 결론에서부터 그 시간의 조각들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시간은 인간이 만드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취해 놓으신 구속사를 따라 한 걸음씩 따라가며 ‘
확인’하는 여정입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우리는 야곱의 일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 뱃속에 있기 전부터, 아니 그 존재가 계획되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고, 하나님의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확정된 복된 미래에서 과거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과정일 뿐입니다.

창세기 32장은 그런 야곱의 삶의 결정적 전환점을 담고 있습니다. 얍복강 나루터, 그 한밤중의 씨름은 단순한 인간과 신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성된 자가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그 옛 자아를 벗어나는 장면입니다. 겉으로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
패배’ 속에 야곱이 비로소 ‘이긴 자’로 이름을 얻는 사건입니다.

야곱이 씨름한 그 밤은 어떤 이들이 말하듯 기도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설득해낸 위대한 승리의 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밤은 야곱의 옛사람이 꺾이고,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덧입혀지는 항복의 밤, 복음의 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꾀와 수단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씨름 중 하나님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이제껏 자신의 이름처럼 살아온 사람입니다. 속이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도구화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바꾸십니다.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 그러나 그 승리는 곧 항복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은 자만이 참으로 승리한 자라는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그의 존재를 바꾸시며, 이제 그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야곱은 그날 밤 허벅지 관절을 맞고 절뚝거리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꾀로 도망칠 수도,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야만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강 이후의 야곱은 변화된 자로 등장합니다. 전에는 자신이 뒤에 서고 가족을 앞에 두었지만, 이제는 그는 앞장서서 형 에서를 향해 나아갑니다. 더 이상 숨어서 자기 것을 지키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품고 나아가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절뚝거리는 그의 다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새겨진 상처였습니다. 그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얻은 이름, 이스라엘의 표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까지도 야곱의 환도뼈를 기억하며 그 부분을 먹지 않는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은 곧, 이 민족이 씨름하는 백성임을, 하나님 앞에서 항상 꺾임을 경험한 자들임을 잊지 말라는 표지입니다.

교회여, 씨름하는 민족이 되십시오. 야곱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 곧 교회의 모형입니다. 교회의 역사, 우리의 신앙 여정은 모두 얍복강과 같은 씨름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옛 사람의 옷을 벗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을 자기 뜻에 맞게 부리려 합니다. 기도도, 예배도, 헌신도 결국은 ‘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싸움을 거십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꺾으시며, 우리 안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삶 속에 얍복강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절망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원의 문턱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복을 붙잡는 자리, 인간의 야망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식되는 자리, 그것이 얍복강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허벅지를 맞고 절뚝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은혜의 흔적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쫓아오십니다. 야곱이 신실했기에, 의로웠기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꾀 많고, 비열하며, 도망치기를 잘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쫓아오십니다. 라반의 손에서 건지시고, 에서 앞에서 보호하시며, 마하나임에서 천군을 보여주시고, 얍복강에서 직접 씨름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야곱의 씨름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하도록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
그 은혜로 말미암아’ 벗겨진 것입니다. 성도는 그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씨름하며, 점점 더 야곱의 옷을 벗어가며 이스라엘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씨름은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날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형상은 고통 가운데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패배 속에서 오는 우리의 승리, 우리의 꺾임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승리, 그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이며 얍복강의 은혜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놓지 않겠습니다.” 이 말은 단지 응답받기 위한 절박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말은, 자기 힘을 다 빼앗긴 야곱이,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이 자신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깨달은 절망의 항복이요, 믿음의 고백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네 이름은 이제 야곱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하라.” 씨름의 밤, 그 꺾임의 순간에서 성도는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절뚝이며, 빛 가운데로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