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계시록 말씀 묵상

언약의 하나님 - 하나님의 침묵, 그 깊은 뜻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23.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 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요한계시록 11:19)

어떤 노련한 산악인이 젊은 제자를 데리고 겨울 산에 올랐습니다. 능선을 넘을 무렵 갑작스러운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두 사람은 간신히 바위 동굴을 찾아 몸을 피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도움을 요청하러 간다. 절대 이 자리를 떠나지 말아라. 내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스승은 오지 않았습니다. 눈보라는 더 거세졌습니다. 제자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스승님이 길을 잃으신 건 아닐까. 혹시 조난당하신 건 아닐까. 내가 직접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스승의 눈빛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함께 수백 개의 산을 오르며 쌓아온 신뢰가 그를 붙들었습니다.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스승이 구조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는 제자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잘 버텼다. 그게 진짜 실력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매달려도 하늘이 닫힌 것 같고, 어떤 날은 하나님이 정말 계시긴 한 건지 의심마저 듭니다. 그 침묵의 동굴 속에서 우리는 흔들립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신앙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침묵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진지하게 일하고 계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려 5만 4천 개나 등장한다고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약속들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들을 각각 따로 붙잡다 보면 어느 순간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간구해도 자녀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셨다.'

그러나 이것은 지도의 일부만 보고 길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그 수많은 약속들은 전부 하나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것은 바로 이 한 문장입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이 언약의 강물로 흘러들어 가는 크고 작은 지류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엽적인 약속들만 붙잡고 하나님께 실망할 때, 우리는 사실 강의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말랐다고 강이 죽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소년 시절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나 선명했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을 무찌른 후 오히려 더 혹독한 세월이 시작됩니다. 사울의 질투를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적국 블레셋으로 피신해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해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맨발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부르셨습니다(행 13:22). 그토록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이 진흙 구덩이에서 허우적이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손을 내밀지 않으셨을까요?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상에 없는" 신앙인이라 인정하신 그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자녀가 죽고, 재산이 사라지고, 몸에는 악창이 났습니다. 그리고 38장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욥은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욥 23:8)

모세는 40년이었습니다. 이집트 궁궐에서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 세월 내내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자손을 약속받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서 썩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 중 누가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찾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미국에 입양된 한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네 살 때 생모에게 버려졌습니다. 놀이공원 벤치에 앉혀진 채, 화장실 다녀온다는 말을 남긴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다 경찰에 넘겨졌고, 미국의 백인 할머니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새 어머니는 더없이 헌신적인 분이었습니다. 5년간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쏟아주셨습니다. 아홉 살 때 양어머니와 디즈니랜드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신 후 한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
또 버려진 건가.'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약속을 쉽게 깨는가.'

그런데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열이 펄펄 끓을 때 밤새 곁을 지켜주셨던 어머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울며 집에 왔을 때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던 어머니, 손수 요리를 해 밥상을 차려주셨던 그 따뜻한 손, 그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우리 엄마는 반드시 온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다.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두 시간이 지나 어머니는 119 차에 실려 오셨습니다.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던 것입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엄마, 올 줄 알았어요."

하나님의 침묵은 바로 이 장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 정말 나를 믿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도,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믿느냐?" 그 질문 앞에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래도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믿음은 비로소 진짜가 됩니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나방으로 변하는 데 약 2주가 걸립니다. 나방은 그 딱딱한 고치를 온몸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하루에 걸쳐 스스로 찢고 나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고치를 조금 잘라 도와주면, 그 나방은 하루를 못 살고 죽는다고 합니다. 고치를 뚫고 나오는 그 처절한 몸부림이 날개 근육을 단련시키고 피를 순환시켜 생존할 힘을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빨리 응답하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허약한 채로 남습니다. 고난 없이 영광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 부모가 언제나 달려가 안아주면, 그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어느 시점부터 부모는 침묵합니다. 그것은 냉담이 아닙니다. 아이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 속에서 침묵하기 시작하셨다면,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신뢰하시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너는 혼자서도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신뢰가 그 침묵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아들을 사고로 잃고 삶의 의지를 잃었습니다. 유명한 현자를 찾아가
"이 고통을 없애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현자는 말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통을 겪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 한 알을 얻어 오시오. 그것으로 당신의 고통을 없애드리겠소." 여인은 희망을 품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집, 자녀가 병든 집, 빚에 쪼들리는 집, 오랜 불화로 신음하는 집, 고통 없는 집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여인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느라 자신의 슬픔을 잊었습니다. 수년이 지나 그 여인은 깨달았습니다. 고통은 나에게만 주어진 형벌이 아닙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가시덤불 속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 이후 이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겼다고 말합니다(창 3:17~18). 그것이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본질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가시덤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시덤불을 벌초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말씀이라는 나침반과 지도를 주셨습니다. 나침반과 지도 없이 가시덤불 속을 헤매는 사람들은 결국 그 속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큰 특권 속에 있는가."

다윗은 13년의 침묵을 버텼습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사울에게 칼을 댈 기회가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존중했습니다. 도망자 신세였지만 부하들을 선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1, 4)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보호하는 막대기입니다. "막대기"는 바른 길을 가르치는 회초리입니다. 다윗은 이제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오히려 그 침묵의 시간들이 목자의 지팡이였고, 아버지의 회초리였음을 압니다. 그것은 모두 "너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언약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성실한 손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죄에게 당하고, 발버둥 치다가 무너집니다. 가끔 금식을 하는데, 무슨 거창한 소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실다보면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 생각밖에 안 나니, 밥을 굶으면 잠시나마 그 욕심을 잊을 수 있어서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눈물이 많아집니다. 대부분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도 변하지 않는가."

그러니 남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일대일로 서십시오. 고통이 찾아오고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그 침묵이 외면이 아니라 언약의 이행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약속의 내용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침묵의 시간은, 그 언약을 향해 흘러가는 강물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이기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편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