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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에베소서 -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룩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1:4~5,7)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우리는 흔히 “구원받았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구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출발점이지 목적지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게 되는 안전장치가 아닙니다. 구원이란 깨져버린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단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된 인간을 다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핵심 단어가 바로 ‘거룩’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구원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처음부터 거룩한 사람을 원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거룩은 단순히 착하게 사는 도덕 수준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먼지만한 죄도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금만 더 나아져 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분 자신의 거룩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십니다.

간혹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어차피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뭘 그렇게 애쓰며 살아야 해?” 하지만 이것은 구원을 정지된 사건으로만 이해할 때 나오는 오해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세 시제로 말합니다. 나는 구원받았다(칭의), 나는 구원받고 있다(성화),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영화).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지금도 진행 중이며,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가 바로 거룩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아이를 입양한 부모는 법적으로 이미 그 아이의 부모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훈련과 양육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실수하면 가르치고, 때로는 꾸짖고, 방향을 잡아줍니다. 그 과정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후, 자녀답게 살도록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구원에는 반드시 변화가 따릅니다. 변화 없는 구원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의 인생이 더 복잡하고 힘들지?” 주일 하루 쉬기도 빠듯한데,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남을 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미쳤다. 왜 저렇게 사냐.” 그러나 그 변화는 억지로 만들어진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성으로 이끌고 계신 흔적입니다.

마치 훈련받는 군인이 민간인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징계라는 방법도 사용하십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사랑의 양육입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거룩을 이렇게 오해합니다. 말투가 경건해야 한다. 얼굴이 늘 온화해야 한다. 기도를 잘해야 한다.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훨씬 깊습니다. 거룩은 사랑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자기중심성,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살인과 성적 타락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타인은 이용 대상이 되고, 관계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거룩이 회복되는 사람은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대신, 자기를 내려놓아 상대를 살립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을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은 윤리 수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혹시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까?
“그래도 나 정도면 꽤 잘 살고 있지 않나?” 그 순간 우리는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공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무익한 종”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거룩한 삶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입니다. 은혜를 깊이 알수록,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기에 순종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거룩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더 큰 교회? 더 많은 사역의 기록? 더 화려한 업적? 아닙니다.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거룩을 향해 달려온 삶, 완벽하지 않았지만, 방향만큼은 분명했던 삶, 수없이 넘어졌지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왔던 삶,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 방향으로 몰고 가십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흠 없고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 방향을 다시 붙잡습니다. 거룩을 향한 이 경주가, 바로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