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역대상1:1~4)
성경을 펼치다 보면 가장 먼저 눈길을 피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족보입니다. 이름, 이름, 또 이름, 이야기의 긴장도 없고, 감동적인 사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역대기를 펼치자마자 책장을 덮게 됩니다. “이걸 왜 읽어야 하지?”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지루한 이름들의 나열로 역대기를 시작하십니다.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역대상 1장은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엽니다. 인류의 시작이자 동시에 실패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노아, 셈, 함, 야벳으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사실 자랑스러운 인물들의 계보가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멸망받아 마땅했던 죄인의 역사입니다. 홍수 이전의 인간은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이름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시점이 다릅니다. 열왕기는 바벨론 포로기 한가운데서 기록되었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고, 왕조가 끊어진 자리에서 기록된 책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모든 비극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결과다.” 반면 역대기는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 땅에 서서,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던 바로 그때입니다. 인간의 실패는 이미 증명되었다. 이제 역대기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우리를 다시 부르시는가?” 그래서 역대기는 사건이 아니라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망한 민족이 아니다. 너희는 여전히 불리고 있는 이름들이다.”
우리는 흔히 족보를 인간의 업적으로 생각합니다. “누구의 자손인가”, “어떤 혈통인가”. 그러나 성경의 족보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끊지 않으셨다”는 기록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기준이 공의만이었다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이름은 홍수로 끝났어야 합니다.
노아 이후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셈의 후손도, 함의 후손도, 야벳의 후손도 다시 죄로 가득 찼습니다. 그럼에도 이름은 이어집니다. 왜일까요? 은혜 때문입니다. 마치 사고를 반복하는 자녀를 부모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족보는 인간의 성취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 기록인 것입니다.
족보 한가운데서 에녹이라는 이름이 눈에 뜁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우리는 종종 에녹을 특별한 믿음의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녹의 업적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 한 문장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에녹이 데려감을 당한 이유는 그의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동행이란, 사람이 하나님을 잘 따라간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놓지 않으신 결과입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에녹은 오래 살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조상들이 900세 가까이 살 때, 그는 365세를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손해 본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오래 사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복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은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를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포로는 징벌이었지만 동시에 수술이었습니다. 인간의 열심과 종교적 자부심을 도려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제사가 멈추고, 왕이 사라지자 비로소 백성들은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온 후,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힘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듭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말합니다. “너희의 실패조차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 있었다.”
역대기의 족보는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는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가?” 신앙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경주가 아닙니다. 성도는 스스로 하나님께 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숨는 것입니다.
족보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의 이름이 이어진 이유는 네가 잘해서가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기의 족보는 지루한 기록이 아니라, 소망의 선언입니다. 죄인 된 인간의 이름을 끝까지 지워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실패한 역사 위에 다시 언약을 새기시는 하나님, 그리고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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