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위기 1:1~2)
레위기는 많은 성도에게 부담스러운 책입니다. 읽다 보면 제사, 피, 규례, 반복되는 절차들 속에서 숨이 막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를 이렇게 오해합니다. “이 책은 잘 지켜야 하는 규칙의 목록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이것부터 저것까지 해내야 한다.” 그러나 레위기의 시작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합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레 1:1) 이 한 문장은 레위기 전체의 방향을 단번에 정리해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신 사건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와 신앙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이제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이 정도는 해야 진짜 신앙입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경건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공통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마치 학생이 성적을 올려야 장학금을 받듯, 직원이 실적을 내야 인정을 받듯, 신앙도 일정 수준의 행위와 열심을 쌓아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늘 비교가 생깁니다. 누가 더 봉사하는지, 누가 더 헌신하는지, 누가 더 오래 교회에 남아 있는지, 하지만 이런 신앙은 결국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코 거룩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는 인간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외칩니다. “너는 스스로 하나님께 갈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거룩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단정히 하고, 죄를 멀리하고,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삶을 사는 것,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전혀 다릅니다. 거룩은 내가 만들어내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신분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죄인이 무죄 판결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판사가 “무죄”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이 선언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다.” 우리가 거룩해진 이유는 기도를 많이 해서도, 봉사를 열심히 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는 이 사실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피 흘리는 제물 옆에 서 있을 뿐입니다. 죽는 것은 제물이고, 사는 것은 죄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있기 전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 제도도, 계명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왜 율법과 레위기가 필요한 것일까요?” 답은 인간이 얼마나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 철저히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 규례는 인간에게 “너는 절대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치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거울은 얼굴을 씻어주지 않습니다. 다만 얼굴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줄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회막에서 부르셨습니다. 회막은 거룩한 사람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죄인이 제물과 함께 나아오는 자리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이 있는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회막은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단이 있는 곳에서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눈물 많은 기도 자리에서도, 헌신의 현장에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죽음이 있는 곳에서만 우리를 만나십니다.
교회 안에는 수고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봉사, 직분, 헌신, 사역…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쁨보다 무거움이 먼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여전히 나의 열심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 내려놓고 내게로 오라.” 이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붙잡고 있는 자기 의, 자기 열심, 자기 증명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쉼은 “내가 다 했다”가 아니라 “주님이 다 이루셨다”는 고백에서 오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를 말합니다. “너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그래서 레위기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세울 행위도 없습니다. 남과 비교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고백만 남습니다. “나의 행함은 쓸데없고, 주님의 십자가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이 고백 위에 참된 찬송이 시작되고, 참된 자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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