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글

역설이 우리를 깨운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4.

우리가 처음으로 조용히 앉아 보려고 할 때,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고요를 만나리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는 소음과 마주합니다. 해야 할 일, 지나간 말, 다가올 염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침묵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소리가 더 커지는 이 경험은 분명 역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 살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여깁니다. 고통이 사라져야 자유로워질 수 있고, 평안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삶은 종종 정반대의 길을 보여 줍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그 한가운데를 통과할 때 오히려 고통을 초월하는 길이 열립니다. 고통은 우리를 부서뜨리는 동시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얕은 위로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고통의 경험이 고통을 넘어서는 통로가 된다는 것 또한 역설입니다.

고요함에 머무는 일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주해야 살아 있는 것 같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존재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조용해지면 공허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요 속에 머물러 본 사람은 압니다. 그 고요가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충만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소음이 사라질수록 삶의 결이 또렷해지고, 존재의 감각이 선명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가장 깊이 살아 있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런 역설을 불편해합니다. 마음은 분명함을 원합니다. 명확한 기준, 확실한 답, 안전한 경계를 원합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함은 우리에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우리의 도식과 계산을 넘어섭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질 때, 오히려 우리는 가장 얕은 차원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역설을 알아보는 더 깊은 차원이 있습니다. 겨울 한가운데에서 이미 여름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아는 감각입니다. 아직 차갑고 메마른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생명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 인식입니다.

삶은 언제나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며 흘러갑니다. 어느 한쪽만으로 이루어진 순간은 없습니다. 기쁨 속에는 이미 이별의 그림자가 있고, 슬픔 속에는 새로운 시작의 빛이 숨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과 맞물려 있고, 드러난 것은 숨겨진 것에 의해 지탱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경청하는 자리로 이동하게 됩니다.

고요함 속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잠드는 것이 아니라 깨어납니다. 마음의 소음이 가라앉을수록,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존재의 미세한 떨림,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부름, 말로 설명되지 않는 진실의 울림이 들립니다. 마음이 침묵할 때, 우리의 귀는 비로소 열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본래의 자기 자신과 만납니다. 역할과 성취, 평가와 비교 이전의 자기, 존재 그 자체로서의 자신과 하나가 됩니다.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와 타자, 나와 세계, 나와 삶 사이의 경계가 부드러워집니다.

역설은 혼란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분명함 너머로 나아가라는 초대, 통제 대신 신뢰로 들어가라는 부름입니다. 고요 속으로, 고통을 통과하여, 빛과 어둠이 함께 춤추는 삶의 깊은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삶은 이해되는 대상이 아니라, 깨어서 살아내야 할 신비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