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기독교 신앙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단순히 감정적인 마음, 즉 기분이나 느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사고와 추리, 의지와 선택, 그리고 결정을 포함한 인간의 내적 중심을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실제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정서(감정)는 인간의 혼적인 기능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작용은 정서에서 비롯됩니다. 문제는 성도가 이 정서에 붙들려 신앙을 살아갈 때, 신앙이 원칙보다 감정에 좌우되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열심히 예배하고, 내일은 기분이 나쁘니 기도도 멈추는 식으로 말입니다. 결국 감정에 지배당하는 신앙은 흔들리고 일관성이 없어집니다.
“정서로 살아가는 사람은 원칙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감정은 언제나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날씨가 흐리면 마음도 무겁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하늘과 땅을 오가듯 바뀝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은 외적 상황과 상관없이, 사람의 속사람 안에서 고요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영감은 깊은 밤에도, 외롭고 차가운 상황 속에서도 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 곧 정서적 충동과 성령의 영감을 혼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음이 뜨겁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마음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는 언제나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옛 본성과 함께 타고난 정서의 지배도 다루십니다. 십자가를 깊이 경험한 사람은 감정이 더 이상 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정서는 성령께 복종하여, 영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께서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의 정서는 그 사랑을 실제 감정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또 성령께서 죄를 미워하라고 하실 때, 우리의 정서는 죄에 대해 거부감과 혐오를 실제로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감정은 영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영적인 사람은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십자가 아래 두고 성령께 복종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의 감정은 더욱 부드럽고, 자비롭고, 동정심 깊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적인 감정은 자기중심적이지만, 성령께 길들여진 감정은 하나님 중심적이고 이웃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에서 흔히 하는 착각은 “내가 감동을 느껴야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감정적 고양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감정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것이 아니라, 영의 인도를 따라 흔들림 없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서를 침묵시키고, 조용히 주목하며 성령의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감정이 다루어질 때,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종이 아니라 영의 자유 안에서 사는 자가 됩니다. 그때 우리의 정서는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는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감정은 외적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만, 성령의 인도는 내적이고 안정적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감정을 다루어, 영을 돕는 도구로 바꿉니다. 영적인 신앙은 감정의 지배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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