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0:38)
십자가는 단지 예수님의 고난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 요구되는 존재의 방식이며, 모든 참된 제자의 삶의 출발점이자 매일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어떤 선한 가르침이나 윤리적 모범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그분의 말씀은 타고난 나, 곧 자기 중심적인 혼적 생명을 포기하라는 초대입니다.
‘혼’(푸쉬케)은 성경에서 흔히 우리의 감정, 지성, 의지, 즉 자아의 활동 전반을 말합니다. 우리 안의 타고난 열정, 재능, 성격, 사랑, 성향, 판단력 등이 모두 여기 속합니다. 이런 ‘혼적 생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자기 보존과 자기 실현을 추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부분을 십자가에 넘기라고 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6:25)
이 생명은 육체의 생명 그 자체라기보다는, ‘혼적 자기’ 즉 자기 애착, 자기 꿈, 자기 연민, 자기 권리 등으로 가득 찬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으로 경건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기중심적인 혼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고통스러운가? 혼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것은 심한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일부를 찢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사랑하던 것, 내 안에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사랑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사건을 기억해보십시오(마 16:23).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이 고난받는 것을 도무지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따뜻한 감정을 "사탄"이라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감정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선해 보여도, 하나님을 막는다면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혼적 생명입니다.
롯의 처는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을 주셨음에도 소유물과 과거에 대한 애착 때문에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몸은 구원의 길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는 주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외적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내려놓은 줄 알았던 것들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내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나를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이 말씀은 주님 자신에 대한 예언일 뿐 아니라, 제자의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타고난 혼적 생명인 재능, 감정, 이성, 판단, 열정이 아무리 고귀해 보여도, 그것은 죽음 없이 절대로 영적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성취욕을 만족시키려는 사람, 은사로 교회를 섬기면서도 자기 자랑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혼적 생명으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열매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언제 열매가 맺히는가? 자신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죽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늘의 생명이 싹을 틔웁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내 길을 따라야 한다"고 부르십니다. 이 길은 고난의 길이며, 자기 부인의 길이고, 혼적 생명을 잃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오직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 참된 자유, 하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요구되지만, 우리 혼의 생명을 억지로 빼앗지 않으십니다. 자유롭게 그 길을 선택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진짜 열매 맺는 영적 삶을 시작하십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진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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