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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영적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은사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9. 17.

“이와 같이 우리도 많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로마서 12:5)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몸을 이루는 수많은 지체가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의 몸을 이루듯, 우리의 삶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이 보지 못한다면 귀가 대신 들려주고, 손이 약하다면 발이 도와 움직여 줍니다. 이처럼 몸의 지체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처럼,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각 성도들이 서로 돕고 세워주는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하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체”라고 부릅니다. 눈, 귀, 손, 발이 다 다르듯이 성도들 역시 저마다 다른 모습과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은사보다는 직제, 즉 목사·장로·집사와 같은 제도적 위치가 더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사는 단순히 특별한 재능이나 권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공급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직분은 몸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라면, 은사는 그 몸을 실제로 움직이고 살게 하는 피와 숨결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돌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함께 아프듯, 한 성도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성도들도 그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픔을 함께 감당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고통을 대할 때 오히려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칠 때가 많습니다. 병이 나면 의사를 찾아가고, 법적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찾으면서도, 영적인 어려움 앞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예언을 받는다”, “치유 기도를 받는다”는 것을 마치 신앙이 약해서 의존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오히려 은사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언이나 치유를 받는 것은 결코 신앙의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마련해 주신 치유의 길을 거부하지 않는 겸손입니다. 우리가 의사나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듯, 교회 안에서 은사를 통해 도움을 청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영적 삶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한 교회의 모습과 달리, 오늘 우리의 교회를 들여다보면 마치 옛날 자급자족 사회와 비슷합니다. 각자 알아서 믿음을 지키려 하고, 은사를 나누거나 도움을 주고받으려는 문화가 희박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종종 삭막하고 단조롭습니다. 제도적 도움은 조금 있지만, 영적 차원에서의 나눔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자급자족의 시대가 얼마나 힘들고 거친 삶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 사회가 풍요로워진 것은 분업화와 전문화를 통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농부는 음식을 공급하고, 기술자는 기계를 고치면서 사회는 점점 풍성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은사를 나눌 때 비로소 풍요로워집니다. 은사는 교회 안에서 영적 삶의 전문화를 이루는 수단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할 일 없음’에 빠져 있습니다. 목회자나 몇몇 사역자만이 교회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대부분은 그저 예배만 드리는 수동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교회 안에서 각자 감당할 자리가 반드시 있습니다. 은사는 신앙의 특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일상의 봉사입니다.

은사를 통해 서로를 돕는 일은 특별한 권력이나 자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향한 평범한 섬김입니다. 목사도 치유 기도가 필요할 수 있고, 성도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수치도 자랑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영적 서비스일 뿐입니다. 의사가 변호사에게 의뢰하고, 변호사가 정비공을 찾듯, 우리는 서로의 은사를 통해 도움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의도하신 교회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고전 12:29) 이 질문은 교회가 결코 한 가지 모양으로만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룰 때 비로소 건강하고 풍성해집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영적 자급자족’의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내 은사를 통해 다른 이를 돕고, 다른 이의 은사를 통해 나도 도움을 받는 곳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의 풍요와 성도의 영적 삶의 질을 높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자랑으로 삼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맙시다. 은사는 그저 교회 안에서 서로 돌보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개발하고, 다른 이의 은사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서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