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사도행전 26:14)
이 말씀은 단순히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 속에만 갇혀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박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고집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다른 방법이나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자리 잡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열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밀어내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꼭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해치지 않아도, 성령을 근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집을 부리고, 내 계획과 의도를 어떻게든 이루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주님을 박해하는 자가 됩니다.
사울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고, 그 지식이 그를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지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식이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순종을 대신할 때, 그 지식은 칼이 되어 형제를 찌르고, 예수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십니다. 이 멍에는 우리를 묶어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완전한 하나됨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멍에입니다.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멜 때, 우리는 나의 주장과 나의 방법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됩니다.
이 고집과 자기 주장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과해야 합니다. 불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자기 의와 자기 영광을 태워버립니다. 성령은 그 빈자리에 온유와 사랑을 심으십니다. 그 전까지는 누구든 자기 중심의 덫에 쉽게 걸립니다. 그러나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자기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혹시 내 고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는가? 내가 가르치는 진리가 내 삶에서도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가? 혹시 나는 ‘거룩’을 말하면서도, 내 행동으로는 여전히 주님을 핍박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와 하나가 되라. 네 뜻을 내려놓고, 나의 멍에를 메라.”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신, 그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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