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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24.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

우리가 구원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 하는 자각입니다. 죄를 모른 채 구원을 말한다면, 그 십자가는 결코 깊은 감격으로 다가올 수 없습니다. 내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십자가가 ‘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귀의 가장 무서운 공격은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를 감옥에 가두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두렵고 치명적인 공격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옛 습관대로, 자기 욕심과 쾌락을 따라 전혀 변함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핍박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평안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신앙은 무너지고 영혼은 서서히 썩어갑니다. 마귀는 그렇게 사람을 죄로 물들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키려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예배당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죄에 더럽혀지고, 욕심과 세속적 즐거움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환난이자 핍박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밧모섬이라는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요, 심판주로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성도들 사이, 곧 촛대(교회) 한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환난 속에 있든, 혹은 아무 일 없는 평안 속에 있든,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신앙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눈은 불꽃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무서운 심판의 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도를 향한 보호의 눈입니다. 그분의 시선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기에, 우리 삶의 감추어진 죄도 드러나지만, 동시에 우리가 당하는 억울함과 눈물 또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그렇기에 불꽃 같은 눈은 심판의 상징일 뿐 아니라,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고 보호하시는 은혜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제사장,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를 이루시는 왕,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선지자, 그리고 결국 의로우신 심판주로 다시 오실 주님.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환난이 눈에 보이는 고통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는 삶 속에서 신앙이 흐려지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더 무서운 환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 성전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끝내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내가 죄인이었음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환난이 없다고 방심하지 말고, 영혼을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핍박을 경계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환난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의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 아니라, 영광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 하나하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성품과 사역을 드러내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님은 대제사장 되셔서 자신의 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긴 옷은 ‘
중재자’ 되시는 주님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맨 금띠는 왕의 권세와 존귀함을 상징합니다.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만왕의 왕이신 그분은, 단지 우리의 중재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흔들려도, 금띠를 두르신 주님은 변치 않는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양털 같은 흰 머리는 영원성과 지혜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변하고 낡아지지만, 주님의 지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합니다. 인생의 길이 어두워 앞을 알 수 없을 때, 흰 머리 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지혜는 언제나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분의 불꽃 같은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상처, 감추어진 죄와 욕망, 세상의 불의까지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그 눈은 불꽃처럼 성도를 지켜내시는 뜨거운 사랑의 시선입니다. 주님의 눈빛은 심판의 불이면서, 동시에 보호와 위로의 불입니다.

빛난 주석 같은 발은 움직임과 행함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발이 주석처럼 빛나는 것은, 그분의 모든 행위가 거룩하고 순결하며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길은 늘 불의와 타협으로 물들어 있지만, 주님의 발걸음은 언제나 공의와 진리로 빛납니다. 그 발을 따르는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인 주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크고 확실합니다. 바다의 파도처럼 힘 있고, 동시에 넓고 깊습니다. 세상의 소리는 우리를 흔들지만, 주님의 음성은 우리를 붙들고 새 힘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습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들(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교회의 미래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연약해 보일 때에도, 주님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붙드시고, 교회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리로서 죄를 찔러 드러내며, 악을 무너뜨리고, 성도를 정결케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 마음을 찌르기에 아프지만, 그 말씀 앞에 서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해 같이 빛나는 얼굴은 태양처럼 빛납니다. 이는 그분의 영광과 승리를 나타냅니다.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주님의 얼굴빛이 우리를 비출 때, 죄와 두려움의 어둠은 물러가고, 소망의 빛이 가득 차게 됩니다.

요한이 본 예수님의 아홉 가지 모습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분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고,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시며, 지혜와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길을 살피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큰 물소리처럼 힘 있고, 그분의 얼굴빛은 태양처럼 소망을 줍니다. 밧모섬의 외로운 자리에서 요한이 이 주님을 바라본 것처럼, 오늘 우리도 각자의 밧모섬 같은 현실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