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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예수 안에서 환난·나라·참음에 동참하는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14.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요한계시록 1:9~10)

밧모 섬의 늙은 사도가 자신을 “
너희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에 함께 참여한 자”라고 소개할 때, 그는 예의를 갖춘 인사말을 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본질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예수 안에서 그분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함께 들어가 사는 사람입니다. 이 한 문장이 요한계시록의 문을 열고, 동시에 우리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례는 단순히 물에 젖는 의식이 아니라, 외부적 작용에 의해 본질이 바뀌는 사건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오이가 식초에 오래 잠겨 전과 다른 것이 되듯,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담가져(union with Christ) 새로운 신분을 입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보십니다.

바울은 이 연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고, 함께 살아났습니다(롬 6장).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지면 그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듯(롬 11:17), 연합은 신자의 생명줄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표와 의복이 이제 예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롬 6:11) 하나님이 그렇게 여겨 주신 현실을 믿음으로 계산하라는 초대입니다.

홍해 사건도 같은 그림입니다(고전 10장). 이스라엘은 신발 하나 젖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모세에게 속한 백성으로 새롭게 여기셨습니다. 애굽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위가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내포적 대표의 은혜이며,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연합은 신비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예수의 길을 함께 걷는 자는 그분의 환난에 동참하고, 그분의 나라에 동참하며, 그분의 참음에 동참합니다.

성경은 성도의 환난을 탈곡기로 비유합니다. 거친 마찰 속에서 겨와 알곡이 분리되듯, 환난은 우리 안의 옛 사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만듭니다(고후 1:9). 그래서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3~4). 여기서 인내는 이를 악무는 버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굳게 서는 충성입니다. 그리고 연단은 시험을 통과해 쓸 만함이 증명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을 두려워하기보다 자랑합니다. “아,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이구나”라며 소망이 더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심”을 받았습니다(골 1:13). 교회는 위로부터 난 백성, 십자가의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원수들 한가운데서 펼쳐집니다(시 110:2). 그러니 십자가의 원리인 져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면, 세상의 힘의 원리는 우리를 얕보거나 짓밟으려 들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환난은 필연입니다. 동시에, 그 환난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참음은 시간 끌기가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끈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오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져 가는 태도입니다. 주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하신 약속은 연합의 사람에게 가능한 삶의 문법입니다.

연합은 수평으로도 번집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이 된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 피로 맺어진 가족의 표지는 같은 아버지에 대한 같은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는 차갑게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
우리가 누구의 자녀인가”를 확인하는 가족관계 증명서입니다. 바른 교리 위에 선 교회는 서로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서로의 영광을 함께 기뻐합니다(고전 12:25–26). 그래서 모이기를 힘쓰라는 명령은 선택이 아니라 성장의 질서입니다. 성령이 영을 깨우시고, 말씀이 생명을 잉태시키면, 그 생명은 교회라는 자궁에서 자랍니다.

현장에서 환난을 자랑으로 바꾸는 길은 가정과 일터에서 십자가의 원리(양보·용서·사랑)를 실제로 선택하십시오. 얕보임이 올 수 있습니다. 그때 “
주님이 이기셨다”는 진술을 소리 내어 다시 고백하십시오.

마음에서 환난을 자랑으로 바꾸는 길은 환난이 올 때, 즉시 결과를 바꾸는 기도를 넘어서, “
주님, 이 상황에서 제 믿음을 굳게 세워 주옵소서. 저를 연단하여 소망이 선명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공동체에서 환난을 자랑으로 바꾸는 길은 혼자 버티지 마십시오. 형제에게 알리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또한 누군가의 환난을 함께 짊어지십시오. 그때 교회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진리에서 환난을 자랑으로 바꾸는 길은 복음의 핵심 교리를 배우고 붙드십시오. 우리는 같은 아버지를 고백함으로 형제가 됩니다. 진리가 사랑을 지키고, 사랑이 진리를 아름답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예수 안에서 그분의 환난과 그 나라와 그 참음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느라 때로는 거친 바람을 맞지만, 내게는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께서 원수들 한가운데서 다스리시고, 우리를 그 다스림 아래 끝까지 지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