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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오늘의 우리 - 우리 집이라는 말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6.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이 말을 입 밖에 낼 때마다 우리는 잠깐 멈추게 됩니다. 단순한 초대의 말인데도, 어딘가 음악처럼 가슴 안쪽에서 울립니다. '우리 집'이라는 세 글자 안에는 그냥 건물의 주소가 아닌, 무언가 더 깊은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겨울, 어느 회사의 과장은 오랜 출장을 마치고 늦은 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창밖으로 낯선 도시들의 불빛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는 문득 그의 집 거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던 노란 불빛을 떠올렸습니다. 그 빛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흔한 형광등 빛이었는데, 그날 밤에는 이상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이란 어쩌면 그 불빛 하나로 충분한 곳인지도 모릅니다.

집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 멀어졌을 때입니다. 어느 청년이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을 때, 그는 솔직히 홀가분했다고 합니다. 작은 방이지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아무도 귀가 시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혼자 끓인 라면이 어쩐지 맛이 없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 어머니가 끓여 주던 된장찌개 냄새가 떠올랐고, 주말 아침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던 바스락 소리가 그리워졌습니다. 그것들이 그립다는 사실을 그는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고 합니다.

가족이란 함께 있을 때는 그 존재가 공기처럼 느껴집니다. 없으면 숨이 막히는데,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 집도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매일 밟던 삐걱이는 마루, 욕실 타일 모서리에 붙은 작은 곰팡이 자국,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여 놓은 오래된 가족사진, 그것들은 낯설게 보일 때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가,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움의 이름을 얻게 됩니다.

물론 집이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 형제 사이에 오래된 서운함이 불쑥 튀어나오고, 아버지는 괜히 목소리가 높아지고, 어머니는 식탁 위 반찬 그릇을 분주히 옮기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합니다. 그러다 한바탕 냉기가 돌고 나면 각자의 방으로 흩어집니다. 그 어색한 침묵이 얼마나 불편한지, 그때는 '이 집에서 나가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부끄러운 순간조차 그리워진다는 것입니다. 명절 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서, 우리는 종종 그 어수선하고 시끄럽던 식탁을 떠올리며 피식 웃게 됩니다.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그래도 함께였다는 기억이, 시간을 지나면서 어느새 따뜻한 빛깔로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그 아픔마저 우리를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청년이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온 날 밤, 그는 친구 집 소파에 누워 '두 번 다시 보나 봐라'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자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귀에 맴돌았습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결국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그게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응, 아버지도 잘 있어"라고 답했습니다. 그 짧은 문자 한 줄에 그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상처는 분명히 있었는데, 그 상처보다 더 큰 무언가가 그를 잇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아버지와 그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아들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고, 그는 그냥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말 없는 그 시간이 어쩌면 우리가 나눈 가장 긴 화해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우리 집"이라는 말을 꺼내면, 나는 잠깐 눈을 감습니다. 겨울 저녁 장작 타는 냄새, 송진이 타면서 퍼지는 달착지근한 향기, 실제로 우리 집에 벽난로 따위는 없었지만, 그 말 속에는 언제나 그런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따뜻하고 낡고, 조금은 매캐하지만, 그래서 안심이 되는 냄새,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냄새...

우리 집이란, 결국 사람들입니다. 문을 열면 반겨 주는 얼굴들, 못마땅해하면서도 끝내 다시 받아 주는 손길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 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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