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늦은 밤, 김 과장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피드를 넘기던 손가락이 멈춘 것은 한 광고 앞에서였습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코인 투자 채널이었습니다. 마침 그는 몇 달째 돈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고,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 한켠에서 무언가가 속삭였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늦지 않아. 남들은 벌써 다 했잖아.'
그는 링크에 손가락을 올렸습니다.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참 기묘합니다. 생각은 번개처럼 스치지만, 그 안에는 이미 하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링크를 누르면 어디로 가는지, 그 채널에 가입하면 무엇이 시작되는지, 김 과장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속삭임은 늘 그렇게 작동합니다. 앞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만 보여주면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김 과장에게는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손가락이 화면에 닿기 직전,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퀭한 눈, 구겨진 와이셔츠, 지쳐 보이는 표정, 그리고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것은 대단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피곤한 남자가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잠깐 멈춘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잠깐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정거장을 앞두고 내려서, 걸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결핍을 채우고 싶다는 충동은 인간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그 욕망이 우리를 끌고 갈 때, 우리가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강물에 몸을 맡긴 사람이 흐름이 빠른 것을 짜릿함으로 착각하듯, 욕망이 만들어내는 속도감은 때로 방향감각을 마비시킵니다.
반면 이성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용하고,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투자를 포기한 김 과장에게 그날 밤 극적인 보상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통장 잔고도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상하게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성의 길이 가진 힘입니다. 당장 무언가를 주지는 않지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자기 중심을 잃지 않은 사람은 비록 느리게 걷더라도,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걷습니다. 그리고 그 앎이 쌓일 때 비로소 삶이 달라집니다.
훗날 김 과장은 그날 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은 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 할 것입니다. 링크를 누르지 않은 것, 창문 속 자신의 얼굴에 잠깐 눈을 맞춘 것. 인생을 바꾸는 것은 때때로 그렇게 작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찰나, 그것을 따라가는 대신 바라볼 수 있는 눈. 그 눈을 갖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평생 길러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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