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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오직 그 이름으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세상은 ‘
착한 일’을 심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병자를 일으켰습니다. 누구나 감동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은 그 일을 ‘착한 일’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왜일까요? 세상은 자기 힘과 명예, 체제를 흔드는 복음을 결코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착한 일, 곧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
착한 일’이란 단순히 선행이나 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 때 “보시기에 좋았다(토브)” 하신 그 ‘좋음’이 회복되는 일, 즉 인간이 본래의 자리,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는 구원의 사건이 바로 ‘착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은 곧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착한 일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의와 자기 통제를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한 번에 오천 명이 회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설득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마이크도, 확성기도, 교회 건물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령이 뒤집히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구원이 인간의 재주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복음은 ‘
듣는 자’의 의지로 결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고백 위에 서야 합니다.

참된 성도의 ‘
착함’은 세상의 도덕적 기준과 다릅니다. 그 착함은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며,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용하고, 얕잡아보고, 때로는 심판합니다. 그래서 복음 안의 착한 일은 언제나 십자가를 동반합니다.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지금도 그 착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옛 자아를 계속 부인시키시고, 스스로 낮아지게 하시고, 결국 예수의 형상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 과정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곧 구원의 여정입니다.

기적은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은 사람들을 모으는 계기였을 뿐입니다. 그 자체가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표적이지만, 그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이 심령 속에 떨어져 그 마음을 깨뜨릴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진, 쓰나미, 전쟁과 같은 사건들을 보며 사람들은 종종 “
하나님은 왜 저렇게 무심하시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심하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경고하시는 나팔소리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의 가치관과 교만을 따라 살면 결국 저렇게 된다.

자연의 법칙을 붙들고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조금만 손을 놓으셔도 세상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 순간은 모두 은혜의 시간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하나님의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느니라.”(행 4:10)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오직 그 이름으로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죄의 마비에 앉아 있던 자, 절망 속에 주저앉은 자를 일으키십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 이름을 재판정에 세우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살리고, 고치고,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착함, 행위,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 그 이름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