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2)
우리의 사고는 늘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라는 두 갈래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신앙조차도 어느 순간 이 이분법 속에 갇혀 버립니다. “저 사람의 신앙은 옳은가? 저 교회의 방식은 바른가?” 우리는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분별의 칼날이 점점 나를 묶고, 내 영혼을 좁은 방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것을 자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사고의 틀 바깥에서, 우리의 분별과 판단의 선을 훌쩍 넘어서는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누군가 조용히 불러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나와 만나자.”
그 들판은 ‘포기’의 공간이 아니라 ‘해방’의 공간입니다. 옳고 그름을 벗어난다는 말은 결코 진리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가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자리로 들어간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옳음을 증명하느라 분투할 때, 마음은 늘 긴장합니다. 반대로 ‘나는 틀렸다’는 죄책감에 갇혀 있을 때, 영혼은 무겁고 위축됩니다. 이 모든 마음의 작용은 결국 나를 중심으로 옳고 그름을 정의하려는 내적 싸움입니다.
그러나 들판은 다릅니다. 그곳은 넓고 열려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옳음도 그름도 내가 증명해야 할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내가 그분 안에 쉬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그 들판에 누우면, 오래 끌어안고 있던 긴장이 서서히 풀립니다. 내가 주장해야 했던 정당성, 내가 지켜야 했던 체면과 위치, 내가 끝까지 쥐고 있던 신념조차도, 그 푸른 풀 위에 내려놓으면 아무렇지 않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이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언어는 언제나 설명하고 방어하고 설득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들판에서는 설명할 것도, 방어할 것도, 설득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말이 잦아듭니다. 생각도 고요해지고, 심지어 ‘나’와 ‘당신’이라는 구분조차 희미해집니다. 그저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품 안에 쉼을 얻는 한 영혼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설명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관계인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든 정의와 설명이 풀어집니다. ‘서로’라는 단어조차 의미를 잃는 이유는 관계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관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분리되었다가 합쳐지는 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었던 관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들판에서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하나로 품어진 존재’가 됩니다.
그 들판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내가 옳음을 증명하는 전투장도 아니고, 내가 틀림을 자책하는 어둠 속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들판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심판의 기준을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판단을 내려놓고, 해석과 설명의 부담을 내려놓고, 그분이 마련하신 푸른 곳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그 들판은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승부’를 내려놓는 곳이 아니라 ‘은혜’가 나를 다시 숨 쉬게 하는 자리입니다.
그곳에 영혼이 눕기만 하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집니다. 얻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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