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까?” 굳이 마음 쓰지 않아도 될 일 같고, 지나쳐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걸립니다. 남의 이야기인데도 가슴이 아프고, 직접 겪은 일이 아닌데도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이런 감정이 약함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무관심이 편해 보이는 세상에서, 신경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가장 불편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곳에, 너의 위로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크게 울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균열이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했다는 기억, 반복해서 무시당했던 순간, 애써 삼켜 온 말들, 그 상처는 소란스럽지 않아서 더 깊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흔드셔서, 누군가의 고통과 같은 파장에 서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 생깁니다.
위로란 대단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답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보다, “그동안 참 힘들었겠다”라는 한 문장이 더 정확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기 고통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다. 그리고 그 확인은 거창한 신학이나 완벽한 언어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짧은 말로 전달된다. 당신이 무심코 건넨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문이 열리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마음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 빨리 판단하고, 너무 쉽게 잊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아픔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멈춤 속에서, 위로는 시작됩니다.
혹시 오늘도 괜히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괜히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그 감정은 부담이 아니라,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신경 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지금 어딘가에, 당신의 말이 꼭 필요한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종,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시기 위해 먼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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