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부정하며 걸어온 시간이 있습니다.우리 역시 그랬습니다. 마침내 긍정을 향해 가는 길에 서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장소에서 부딪히고 넘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세상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삶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 길을 걸어야 했는지,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외면당한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 상처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몸에 남은 흔적처럼 선명합니다. 붉은 빛을 띠는 자주색 흉터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표식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떤 고통은 오히려 더 깊이 새겨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들은 마치 상형문자처럼 우리 안에 새겨졌습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 논리로 풀리지 않는 아픔. 그러나 분명히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암호 같은 것들 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암호를 잘못 읽어 왔다는 데 있었습니다. 상처는 우리에게 “너는 부족하다”, “너는 사랑받을 수 없다”, “이 길은 틀렸다”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그 음성을 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상처는 우리를 치유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 또 다른 잘못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알게 됩니다. 상처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상처를 해석하는 우리의 시선이 문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통 그 자체보다 더 우리를 아프게 한 것은, 고통을 통해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상처 앞에서 충분히 슬퍼하지도, 충분히 울지도 못한 채, 서둘러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덮어두려 했습니다.
치유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도망치지 않고 돌아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 길을 천천히 되짚어 봅니다. 오래된 상처, 오래된 방황을 하나하나 들어 올립니다. 마치 무거운 돌을 가슴 위에 올려놓듯, 피하고 싶었던 기억들을 내 심장 가까이 가져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신성하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상처가 어떻게 신성할 수 있을까. 실패와 좌절, 외면당한 기억들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상처들은 우리가 살아왔다는 증거였습니다. 사랑하려 했고, 믿으려 했고, 끝까지 버텨보려 했다는 흔적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삶에는 흉터도 남지 않습니다. 상처는 우리가 무너진 자리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이 상처들이 우리를 망가뜨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이 방황이 우리를 길 잃게만 한 것이 아니라, 결국 긍정을 향한 길로 이끌었다고, 치유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치유의 끝에서 우리는 더 이상 상처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을 품에 안고 말합니다. “너도 내 삶의 일부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그때 비로소,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신비가 되고,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깊이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하게 된 치유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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