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마가복음7:6~9)
예수님께서 가장 분노하셨던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세리나 창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종교적으로 가장 모범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고, 메시아를 기다리며 금식과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 23:33)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외식’이라고 진단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외식은 단순한 위선이나 거짓과는 다릅니다. 외식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를 앉히는 죄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예배,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를 높이려는 모든 시도가 바로 외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박수와 인정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금식은 자신들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청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실체를 보시고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에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존재, 그게 외식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마 6:1).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고 했다면, 그건 ‘종교행위’가 아니라 ‘자기 우상 숭배’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외식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신앙생활을 하기도 하고, “내가 기도했더니 응답받았다”고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 드리는 무릎 꿇는 간청입니다. 기도를 통해 나를 드러내려는 시도는 기도가 아니라 신성모독입니다.
외식은 단순한 위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를 보십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사람들의 문안을 즐기며, 기도와 금식을 영적 과시의 도구로 삼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합니다.
외식은 결국 하나님 없이 경건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신앙은 아무리 거룩해 보일지라도 그 끝은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외식의 탈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중심의 진실함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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