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너의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맛나를 네게 먹이신 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명기 8:1~4)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역사는 '광야'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기까지 사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을 광야에서 걷게 하셨습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시험의 여정이었습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며,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이 과정은 그저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3)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생명 원리를 몸으로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험의 본질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8장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못 지킴"입니다. 이스라엘 1세대, 즉 '옛 사람'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켜 영생에 이르는' 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요구 앞에 설 수 없습니다. 99점도 빵점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할 위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서 7:20)는 선언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고,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하게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철저히 무능력함을 깨닫는 것이 참된 신자의 자기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리게 하십니다. 이 주림은 단지 물리적인 배고픔이 아닙니다. 아모스서 8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성도의 참된 굶주림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갈증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설교를 들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이 바로 '광야'의 정체입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묵상하고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나는 모릅니다"라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당신의 은혜만이 나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역사가 우리에게 남기는 결론입니다. 인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나는 생명에 이를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잠재력을 북돋는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너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무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붙잡게 하는 책입니다.
이 광야의 여정에서, 우리는 결국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은 결국 인격이 되셨고,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분 외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의 인생 가운데 외칩니다.“예수여, 오시옵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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