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로마서 5:5~11)
시간을 향해, 생명을 향해, 돈을 향해, 영생을 향해 우리는 달리고 있습니다. 팔뚝에 새겨진 시계처럼 우리는 매일을 달려갑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 그 시간을 생명으로 둔갑시켜 하루하루를 연명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우리 모두의 무의식 깊숙한 본능을 드러냅니다. 생존,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 시간을 모아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욕망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롬 5:8) 그분은 달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멈추셨습니다. 죄인 된 나를 위해, 시간을 모으려 죽어가는 나를 위해,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모아 만든 인생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세슘 원자의 진동에 맞춰 쌓아올린 시간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아무런 생명력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시간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시간, 그 죽음,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 5:9).
이 세상은 ‘시간은 생명’이라는 거짓 신화를 진리처럼 여기며 사람들을 달리게 만듭니다. 영화 인 타임처럼 말입니다. 시간은 화폐고, 생명이며, 가치이며, 곧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자지 않고,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생은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쌓아도, 우리는 그 안에서 생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한번 해보아라. 시간으로 생명을 만들어 보아라.” 하지만 결국 이 시간은 몰수당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종말은 시간의 몰수입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시간은 생명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시간, 그 사건 속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합니까? 우리 자신의 생명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죄인 된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달려야 합니다. “죄인 생명을 사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의 시계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더 많이 벌고, 더 오래 살고, 더 편하게 누려라. 그게 복이다.” 그러나 복음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네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잃으면 찾을 것이다.” (막 8:35)
이제 우리는 시간 속에 감금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증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달리지 마십시오. 이제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잃어버린 생명을 위해, 예수의 피를 전하기 위해 달리십시오.
예수께서 멈추신 그 십자가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생명이 아닙니다. 인간은 시간을 모아 영생을 얻으려 하지만, 생명은 오직 예수 안에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열어주신 시험장이며, 그것을 통해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 예수님임을 드러내십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했습니다. 빌딩은 곧 연기로 뒤덮였고 수천 명의 사람이 건물 안에 갇혔습니다. 모두가 죽음을 피해 건물 밖으로 달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을 거슬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소방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연기가 자욱하고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 그 불타는 곳으로 자신의 시간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날, 343명의 소방관이 사망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아직 20대였고, 막 결혼을 했거나 갓 아이를 본 아버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소중하고 아까운 생명'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버려지는' 장면을 봅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식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축적해서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더 기름진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간과 생명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 그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불 속으로 뛰어드셨습니다.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야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 잠시 있는 우리가, 진짜 생명, 곧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 1:4)
오늘도 우리는 시간에 쫓겨 살고, 시간을 늘리고 싶어 안달하며, 시간과 생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시간을 모아 영생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이 진리를 아는 우리는 이제 시간의 종이 되어 달리지 않고, 예수의 종이 되어 따라가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에게 참 생명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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