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3~15)
야고보서 1장 13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정직한 실상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 시험은 너희 안에서 일어난다." 이 말은, 우리가 고난이나 유혹을 만날 때 흔히 하나님 탓을 돌리는 태도에 일침을 놓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헬라어로 페이라조, 즉 유혹하고 무너뜨리려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도키마조, 즉 시험을 통해 정금같이 만들고, 걸러내어 진짜를 드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정화의 고난을 파괴의 유혹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야고보는 분명히 말합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이 ‘욕심’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피뚜미아 입니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 자기중심적인 집착과 고집을 뜻합니다. 우리가 죄에 빠지는 이유는 밖에서 오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안에서 끌어오르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이 흥미롭습니다. 헬라어로 죽음은 다나토스 입니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점점 진행되어 마침내 어떤 의미를 ‘완성하는’ 죽음입니다.
그러면 다나토스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 역시 다나토스입니다. 날마다 자기 안의 옛 자아가 무너지고, 죄인 됨이 드러나며, 결국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는 고백으로 완성되는 죽음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향한 죽음이며, 구원을 위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정녕 죽으리라(무트 타무트)”는 말 역시 이와 같습니다. 히브리어로 ‘무트’는 ‘죽다’이지만, 의미적으로는 ‘말씀으로 완성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면 죽음이 임하나, 그 죽음을 통해 다시 말씀은 완성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함께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그냥 멈춘 ‘네크로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완성한 다나토스였습니다. 율법의 성취, 말씀의 실현, 인간의 구속을 완성한 죽음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 상실, 낙심, 자괴, 자기부인…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완성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성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험과 유혹의 의미, 그리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마주하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 왜 이러세요?”라고 묻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며, 진짜가 되게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욕심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에피뚜미아, 이 자기중심적 욕망이 하나님의 선한 시험조차 악한 유혹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결국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죽음은 단순한 파멸이 아닙니다. 죄가 드러날 때,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그때 우리는 참되게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죽음이 바로 다나토스, 구원에 이르는 죽음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율법을 완성하시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욕심이 드러날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죄의 실체를 밝히고, 은혜를 갈망하게 하며, 결국 복음을 붙들게 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날마다 죽으십시오. 날마다 옛 자아를 깨뜨리며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이 당신의 삶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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