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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사망을 지나 영생으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7.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이 구절은 복음을 가장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요약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익숙하게 듣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 '사망', '영생'이라는 단어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무게를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한 진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개념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하나님이 죽으실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이 교회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사유 구조가 복음을 오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 중 하나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 우리가 이해하는 생명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것과 같은 것일까요?

우리가 아는 '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더럽고, 무섭고, 피해야 할 재앙으로 여깁니다. 생명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 자체가 이미 인간의 선악체계에 기반한 판단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단순한 생명의 종료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
죽음’은 진리를 잃어버린 피조물의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형이며, 동시에 진리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모든 존재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 영원이 ‘진리의 생명 안에 있는가’, 아니면 ‘진리에서 분리된 상태로 영원히 사는가’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열리는 문일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찰나를 지나 영원을 향해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완성된 자에게는
‘임종(臨終)’입니다. 곧 ‘종(終)’이요, ‘완성’이요, ‘성취’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거부한 자에게는 그것이 ‘죽음(死)’이며, 진리와의 영원한 단절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초반에서 율법과 죽음을 결혼 관계로 설명합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여인은 그 법에 매여 있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결혼 법의 예가 아니라, 율법 아래에서 죽지 않으면 결코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모형입니다.

우리는 본래 율법이라는 남편 아래에서 죄의 정욕에 이끌려 살던 존재였습니다. 그 결과는
‘사망을 위하여 맺는 열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참여한 자들은 이제 율법의 법적 구속력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이제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억지로, 외형적으로, 눈가림식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발적이며 진리에서 비롯된 섬김입니다. 이 섬김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이며, 율법 아래서의 억눌림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죄와 사망의 정의를 다시 봐야 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도구이지, 죄 자체가 아닙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를 죄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심’이라는 마음의 작동을 죄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죄의 삯은 분명히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은 단순히 육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실존적 파멸을 의미합니다. 죄는 단지 잘못된 행동의 누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진리의 목적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
하마르티아’, 과녁을 벗어남 이라는 말이 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단지 ‘
’이 아니라, ‘진리에서 벗어난 존재의 완성된 형태’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생기(르와흐), 그 영의 호흡이 없다면, 인간은 진리를 떠난 ‘죽은 존재’로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 사망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만드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자리에 서셔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와 함께 죽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더럽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고, 죄의 정욕에서 놓이게 되는 유일한 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망이 선물이다. 왜냐하면 그 사망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 은혜의 죽음을 통과한 자만이, 이제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로의 완성이며, 진리를 향한 문이며, 복음의 생명력 안에서 열리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당신은 ‘
죽음’에 대해 세상이 말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율법에서 자유로운 진리의 섬김이 당신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억눌림과 의무로서 신앙을 유지하려 하십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
죽음’을 통과한 사람입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죽음을 지나 얻는 생명’, 그 은혜의 길을 오늘도 붙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