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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마음에 새겨진 죄, 그리고 고침을 구하는 마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6.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렘 17:1)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인간의 실체, 곧 죄로 물든 본질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단지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
마음’이라는 심연의 판에 죄가 아예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외칩니다. 그것도 금강석,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으로 말입니다.그것은 누구도 지워낼 수 없습니다. 아무도, 스스로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유다 백성의 죄는 산당에, 우상 숭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이 마음에 새겨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입니다. 죄는 외적인 행위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존재 깊숙한 뿌리, ‘
’라는 존재 자체에 각인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이 아니라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10절). 그분 앞에서 우리의 방어기제는 무의미합니다. 겉으로는 의롭고 선해 보이는 모든 것도, 하나님은 그 동기와 중심까지 들여다보십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모릅니다. ‘나는 선한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자기의 영광, 자기 유익, 자기 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마음이야말로 가장 부패한 것이라고 진단하십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간은 그것조차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
이스라엘’을 외부의 인물로 여기기 쉽습니다. 예레미야가 고발하는 유다의 죄를 ‘그들’의 문제로 치부하며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이스라엘은 ‘’입니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 이 순간도 죄에 물들어 살아가는 '' 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고발은 단지 고대 유다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구원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반역하는 백성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영적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며 끝없이 찌르고 파헤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가차 없습니다. 선지자의 혀는 날카로운 철필처럼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그러나 이 폭로는 저주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죄를 보는 자만이 은혜를 갈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패함을 아는 자만이, 다음과 같은 고백을 진심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4절)

이 구절은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닙니다. 절망 가운데 터져 나오는 진짜 믿음의 고백입니다.
‘나는 스스로 나를 고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하셔야 합니다.’라는 절대 의존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더 나은 환경? 안정된 삶? 아니면 성공과 회복?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
고침’입니다. 내 마음, 내 존재, 내 자아의 깊은 부패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떤 축복도 결국 죄악의 통로로 변질될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죄 지은 마음, 썩은 존재를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저 잘 살게 해주시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죄를 그 피로 지우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설교를 접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말씀을 통해 제 마음을 찢어 주소서. 감추어진 나의 죄, 나의 의로움, 나의 위선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찌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방어합니다.
‘나는 그런 의도로 한 게 아닌데…’, ‘내 상황은 좀 달랐는데…’, ‘다른 사람은 더하던데…’ 그러나 그 방어는 거룩을 가로막는 가장 교묘한 죄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하나님 앞에 방어 없이, 무장 해제된 마음으로 서십시오. 말씀이 아프게 찌를수록, 더 큰 은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나를 드러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더러움을 철저히 직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고침 받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상처와 부패를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은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네 마음은 어떤가? 너는 나를 찬송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너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물음 앞에서 회피하지 마십시오. 정직하게 말씀 앞에 나아가 고백하십시오.
“주여,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겸손한 자의 기도요, 진정한 회복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