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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윤리와 영성 사이에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31.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윤리이고, 다른 하나는 영성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는 늘 함께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언제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윤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작동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회와 제도, 책임과 의무, 상식과 합리성의 영역입니다. 반면 영성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영의 인도하심, 말씀과 성령의 역사,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이 둘은 본질부터 다릅니다. 윤리는
‘내 안에서 시작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영성은 ‘밖에서 와서 나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윤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동하지만, 영성은 종종 나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늘 동시에 경험하면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윤리부터 먼저 선택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늘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합니다. 누군가 그를 평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참 인격적인 사람이야.” 이 말은 칭찬처럼 들립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평가 속에는 묘한 빈틈이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늘
‘이해 가능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도도 하지만, 결정은 늘 상식과 계산을 통해 내립니다. 말씀을 읽지만, 말씀으로 인해 삶의 방향이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신앙은 영적인 결단이라기보다 윤리적인 선택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은 은근히 불편해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측할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상해 보입니다. 종교적 열정이 지나치지도 않고, 합리적이며, 사회적 기준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지성인일수록, 학문적 성취가 높을수록 이런 신앙 형태를 선호합니다. 영적인 일을 모두 윤리의 언어로 번역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을 윤리적으로 각색하면, 신앙은 안전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힘을 잃습니다.

질병이라는 상황을 예로 들어봅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치료 계획을 세운 뒤에야 기도합니다. 기도는 마치
“혹시 모르니까 덧붙이는 선택지”처럼 취급됩니다.

왜 이런 순서가 자연스러울까요? 우리는 늘 윤리적·합리적 판단을 우선하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 먼저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개입은 그 다음입니다. 이 순서에 대해 우리는 거의 질문하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순서를 바꾸면,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왜 병원부터 안 가세요?”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닙니까?” 이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영적인 것을 우선하는 것이 과연 비상식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너무 윤리적인 세계에만 길들여진 것일까요?

그렇다고 해서 영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태도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결정을
‘성령의 음성’이라는 이름으로 처리합니다. 현실적인 조건이나 책임, 관계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 그중에서도 특정 책만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합니다. 요한계시록이나 에스겔서를 통해 정치, 경제, 질병, 사회 현상을 모두 해석하려 듭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윤리를 무시한 영성은 신비주의가 되고, 영성을 배제한 윤리는 세속주의가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이 둘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삶이 아닙니다.

건강한 삶이란 균형입니다. 그런데 이 균형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분별은 경험에서 옵니다. 한쪽만 경험한 사람은 분별할 수 없습니다. 윤리만 경험한 사람은 영성을 미신처럼 여기고, 영성만 경험한 사람은 윤리를 불신앙으로 오해합니다.

우리는 먼저 윤리적인 세계를 통해 기본을 배웁니다. 책임, 질서, 관계, 한계, 그리고 그 위에서 영적인 세계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은혜, 부르심, 인도하심, 사실 이 두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부터 인식할 뿐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더 많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학문에서 배운 분석력과 판단력이,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윤리와 영성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 이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만 택합니다. 대개는 윤리입니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늘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좁은 길, 소수의 선택, 세상과 다른 판단, 이것이 늘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늘 다시 묻게 합니다.
“지금 이 선택은 단지 안전한가, 아니면 순종인가?”

온전한 삶은 편한 삶이 아닙니다. 분별하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윤리와 영성, 이 두 가지를 붙들고 오늘도 우리는 길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살아 있는 신앙의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갈라디아서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