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멸망시키느니라.”(잠언 11:3)
요즘 젊은 세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긱(geek)’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오타쿠(御宅)’라고 합니다. 본래 이 말들은 단순히 특정 분야에 몰두한 사람을 가리켰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졌습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름을 부르며 책임을 지는 관계보다, 익명 뒤에 숨은 채 부담 없이 드나드는 관계가 더 편해질 때, 그때부터 인간은 서서히 정직을 잃어갑니다. 익명성은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부정직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상처를 주어도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게임 속 닉네임, 댓글 창의 아이디, 온라인 세계의 가면은 우리로 하여금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게 만듭니다. 정직은 그렇게 조금씩 불편한 덕목이 되어갑니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은 정말 사실일까? 이런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습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참가비는 10만 원”이라고 알린 뒤, 실험이 끝난 후 일부러 15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약속한 참가비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90% 이상의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받아 들고 나갔습니다. 봉투를 열어보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망설이는 표정은 있었지만 결국 대부분은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사람들은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직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불편과 손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갈등의 순간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은 쉬운 미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직은 언제나 우리를 결단의 자리로 몰아넣습니다. “이걸 말하면 손해를 볼 텐데”, “괜히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닐까”, “다들 이렇게 하는데 굳이?” 이 질문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정직에 이를 수 없습니다.
정직은 훈련입니다. 미국 심리학회의 또 다른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직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손해를 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깊은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한 번 정직을 선택한 사람은 다음 선택에서 덜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정직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을 통해 몸에 배는 습관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렵고 아프지만, 그 길을 몇 번 걷다 보면 양심은 점점 또렷해지고 갈등의 무게는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작은 일에 충성된 자”를 말합니다. 작은 거짓을 쉽게 넘기는 사람은 언젠가 큰 거짓 앞에서도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합니다. 양심은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반드시 퇴화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맥스 주크의 가문 이야기는 이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에드워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선택을 하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후손들 가운데는 지도자, 학자, 공직자, 목회자들이 이어졌고 그 가문 전체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주크의 가문은 순간의 쾌락과 책임 없는 선택을 반복한 결과, 빈곤과 범죄와 파괴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것은 유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유산이었습니다. 정직은 개인의 미덕이지만, 그 열매는 반드시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까지 흘러갑니다.
정직은 왜 이렇게 힘들까요? 정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따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고, 고립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부르실 때 다른 무엇보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극히 강하고 담대하라.” 정직은 선량함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고집,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진실 편에 서겠다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의를 보아도 침묵합니다. 내부고발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침묵하는 사회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무너뜨립니다.
정직은 결국 승리합니다. 정직은 단기간의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손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진실과 정의이며 그 법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직은 인내의 훈련이고, 믿음의 훈련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이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거짓을 바로잡는 용기,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연습이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사람을 살립니다. 익명성 뒤에 숨는 세대가 아니라, 이름을 걸고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세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며,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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