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브리서 5:14)
훈련은 미숙한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얼마나 잘 훈련받았느냐에 따라 사역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집니다. 이제 나머지 다섯 가지를 이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섯째, 죄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사역자가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중년 여성을 돕게 되었습니다. 기도도 했고 상담도 했습니다. 증상이 잠시 가라앉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역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여성의 내면 깊은 곳에는 수십 년 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처리되지 않은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의 증상만 건드렸을 뿐, 그 뿌리를 다루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일이며, 처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죄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영혼을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잠식합니다. 사역자가 이것을 피상적으로 다루면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죄의 다양한 양상과 그것이 삶에 남기는 증상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은 연구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사역자 자신이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다루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걸어보지 않은 길로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일곱째, 세부적인 기능들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외과 의사가 처음 수술실에 들어설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기본 원리가 아닙니다. 어떤 절개를 얼마나 깊게, 어떤 각도로, 어느 순간에 해야 하는가 하는 세밀한 판단입니다. 사역도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에게,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어떤 순서로 적용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미숙한 사역자는 세부적인 것에 약합니다. 대충 다루고 넘어가다 보니 실수가 잦고, 의도치 않게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사역에 대한 불신은 대부분 이런 거친 손에서 시작됩니다. 반면 세밀한 훈련을 받은 사역자는 성급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그 문제를 통해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세부적인 기능은 2~3년의 공부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합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는 순간, 관심은 하나님의 일에서 자신에게로 쏠리게 됩니다. 명예와 자랑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깊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깊이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여덟째, 은사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두 배의 영감을 구했고, 더 많은 이적을 행했다고 전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많은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더 커서가 아니라, 스승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그 위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지식 위에 지식이 더해지고, 경험 위에 경험이 쌓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성장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지경이 넓어지는 길에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교만과 침체입니다. 계속 성공하면 교만에 빠지고, 계속 실패하면 침체에 빠집니다. 지도자가 곁에 있으면 이 두 가지 함정을 제때 짚어줄 수 있습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자신이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른 채 걷습니다. 좋은 스승 아래서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만이 은사의 지경을 온전히 넓혀갈 수 있습니다.
아홉째, 사역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역의 현장은 함정이 많은 곳입니다. 미숙한 사역자는 그 함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빠집니다. 문제는 빠지고 나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은사 사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은, 대부분 훈련받지 않은 사역자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수의 책임을 미숙한 사역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준비시키지 않고 전선에 보낸 것이 문제입니다. 교육받지 않은 병사가 실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는 실수하는 사역자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도 현실이 있습니다. 약한 자는 무시당하고 강한 자는 대접받는 구조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훈련을 통해 이미 검증된 지도자의 울타리 안에 서게 될 때, 사역자는 불필요한 비난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훈련은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역자 자신을 지키는 갑옷이기도 합니다.
열째, 교회의 덕을 세우는 요령을 터득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젊은 사역자가 집회 중에 한 여성에게 예언적 말씀을 전했습니다. 선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그 여성의 가족이 함께 앉아 있었고, 그 말씀은 가족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역자는 당황했고, 수습하려 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 집회 이후 그 교회에서는 은사 사역에 대한 문이 오랫동안 닫혔습니다.
사람들은 사역자를 아마추어와 전문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역의 자리에 선 사람은 모두 전문가로 봅니다. 그러므로 실수는 즉시 사역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집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은 단순히 좋은 의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술입니다. 다양한 상황에 능숙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앞선 이들의 경험을 듣고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사역에 쌓아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험을 넘어서는 요령은 없습니다.
열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열 가지는 각각 하나의 긴 강의가 될 수 있을 만큼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윤곽을 그렸을 뿐입니다.
훈련은 고통스럽고 더딥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멈추거나 돌아섭니다. 그러나 훈련을 온전히 통과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그 능력이 사람에게 닿아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기까지는, 훈련이라는 긴 기다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기다림은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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