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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이미지로 임하시는 성령의 언어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25.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27)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
형상’이라는 단어, 즉 ‘image’는 단순한 외모를 넘어서 하나님이 의사소통하시는 방식, 인격적 존재로서의 기능, 감정, 사고, 상상, 창조성 등 우리의 존재 전반을 포함합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소통 방식이 곧 이미지임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말씀은 종종 청각적인 음성 이전에 시각적인 ‘비유’와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대부분의 가르침을 ‘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단순히 듣는 이들이 무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제각각이기에,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가장 깊이 있는 방식, 곧 이미지와 비유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학자도 농부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가 이미지로부터 자신의 몫을 받아들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은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감각, 상상, 직관, 감정이라는 복합적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을 하나님은 인간 안에 심어두셨습니다. 마치 꿈을 꿀 때 이미지가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성령의 언어 또한 이미지와 같은 ‘포괄적인 느낌’으로 주어집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읽고, 먹고, 느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환상과 이미지로부터 전달된 포괄적인 메시지를 내면에서 해석해냈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예언적 과정은 지극히 인격적이며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이미지의 해석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묵상과 순종을 통해 해석되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은유와 풍유로 나뉩니다. 은유는 감정과 상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상징이고, 풍유는 뜻을 숨긴 채 암시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단지 귀로 들리는 말이 아니라, 삶 전체로 느껴지는 상징입니다. 꿈과 환상, 그리고 불현듯 밀려오는 어떤 ‘
느낌’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비유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귀로 듣는 음성과는 다르며, 오히려 감각의 교차점에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미지로 다가오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은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성품, 경험, 사고방식, 감정의 깊이가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통은 개인적이면서도 공통적인 해석 원리를 갖는 이미지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두 번째는 인격적인 묵상과 해석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
묵상’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그 이미지를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주님의 비유는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고, 제자들은 늘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은 곧 친밀함을 구하는 열망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고후12:4)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영적 진리는 때때로 말의 구조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지를 사용하여 우리의 내면 깊숙이 말할 수 없는 진리를 새기십니다.

성령의 음성은 ‘
침착하라’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단순한 교훈이나 당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느낌을 깊이 묵상하며,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침착해야 하는가를 성령과 동행하며 풀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의 인격적인 동행이며, 예언적 삶의 시작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
’로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씀을 먹고, 소화하고, 삶 속에 적용하여 의미를 분별해내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년간 꿈을 기록하고 해석하며 이미지와 상징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미지는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미지를 남에게 무턱대고 해석하거나 전가하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적어도 3년 이상 자신의 꿈과 이미지, 느낌을 성경의 원리 속에서 해석하고 삶에 적용해본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타인을 위한 계시적 사역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단지 ‘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자신의 삶에서 살아내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 훈련의 도구가 바로 이미지이며, 꿈이며, 환상이며, 그 모든 것으로 들어오는 성령의 포괄적인 음성입니다.

상상은 상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이미지 한 조각이지만, 그것이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단어보다 이미지로 더 깊이 각인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골 1:15).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그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이미지와 경험을 통해 인식된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깊은 이미지를 따라가십시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말씀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새겨집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결국,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해석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언어, 하나님의 이미지입니다.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9:15)
이 감사는, 결국 이미지로 오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