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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영과 혼을 분별하며 드리는 예배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2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우리는 흔히 인간을 ‘
영혼과 육체’로 단순하게 구분하지만, 성경은 보다 정밀하고 깊은 관점에서 사람을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명백하게 이 세 영역을 구별하여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이 전체 인격의 전인적 거룩함을 이루시길 원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단지 인간의 존재 구조를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고, 예배하고,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몸(soma), 혼(psuchē), 영(pneuma)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로 설명합니다. 몸은 우리의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영역으로, 외부 세계와 교통하며 생존을 유지하는 기관입니다. 혼은 우리의 지성, 감정, 의지 즉 자아가 거하는 영역입니다. 사람의 감정적 반응, 지적인 사고, 선택의지 등은 혼에 속한 기능입니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자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데, 그 접점이 바로 ‘
’입니다.

흔히 우리는 혼과 영을 구분하지 못한 채 ‘
영혼’이라는 단어로 혼합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은 이 둘을 철저히 구별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밀하고 깊이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듯 가르며, 혼의 감정적 혹은 이성적 열심과 영의 생명에서 비롯된 순전한 순종을 분별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듭남은 영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하셨을 때, 주님은 혼의 변화나 도덕적 결단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그 영이 죽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긴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무리 지성적으로 성경을 분석하고, 감정적으로 예배에 감동하며, 의지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추구해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죽은 영’을 가진 채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혼의 결단이나 노력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우리의 죽은 영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는 영의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말하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과 하나가 되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롬 8:15).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는 바로 ‘’의 자아를 말합니다. 인간의 자아는 감정의 동요, 지식의 오만, 의지의 완고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나 기도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혼의 감정적 흥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노래나 드라마에 눈물 흘리듯,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감정적으로만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혼입니다.

그러나 영에서 일어나는 감동은 다릅니다. 그것은 겸손하게 무릎 꿇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자신을 내려놓게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진정한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의 감동은 삶을 바꾸고, 죄를 떠나게 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반면 혼의 감동은 일시적이고, 자아의 만족에 머무를 뿐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말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성령님은 인격적인 감정이 있으신 분이시며,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 우리의 영을 통해 기뻐하시고, 탄식하시고, 교제하십니다(롬8:26). 따라서 우리의 예배와 찬양, 기도와 순종은 이 성령님의 감정과 교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배란 혼이 아닌 영의 중심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찬양이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았더라도, 기도가 언변이 없더라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전하게 자신의 자아를 부인한 그 자리에 성령님의 감동이 임할 때, 그 예배는 천사들조차 놀라게 할 만한 거룩한 향기가 됩니다.

지금의 교회는 혼의 노래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화려한 음악과 감정을 자극하는 메시지, 인간 중심의 위로와 동기부여가 넘치지만, 그 안에 영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아가서 2장 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노래할 때가 이르렀고…”

이 겨울 같은 시대, 혼의 신앙을 넘어 영의 신앙으로, 인간 중심의 종교를 넘어 하나님의 중심으로 회복되는 영적 봄이 도래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내 안의 혼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감동에 철저히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혼은 예배의 도구일 수 있으나, 중심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진정한 예배, 진정한 삶, 진정한 부흥은 오직 영에서 시작됩니다. 성령과 연합된 영, 주님과 하나 된 그 자리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세상에선 볼 수 없는 감동과 변화를 일으킵니다. 음악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혼의 감정을 멈추고 오직 영에서 성령님의 감동만을 따르는 그 예배야말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오늘도 내 자아를 내려놓고, 내 혼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내 영을 열어 성령님을 맞이합니다. 그분과 하나 되어 부르는 노래, 그분과 하나 되어 걷는 삶. 그곳에 진정한 부흥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