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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이사야 - 고발당하는 신앙 그러나 남겨진 은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3)

이사야라는 이름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을 가진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발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이미 남과 북으로 갈라진 상태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 역시 같은 길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전이 있고, 제사가 있으며, 절기와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재판정에 서듯 이스라엘을 고발합니다. 그 고발의 첫 장면은 매우 엄숙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는 감정적인 탄식이 아니라, 언약 재판의 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때 이미 하늘과 땅은 증인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약 600년 전 광야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며 동일하게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그때 모세가 경고했던 말씀이, 이사야 시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단순합니다. “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 말 속에는 분노보다도 배신당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자식들은 아버지를 모른 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짐승을 예로 드십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압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짐승이 주인을 따르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본능조차 없는 신앙, 그것이 이스라엘의 상태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새들도 철을 알고 돌아오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를 모른다고 탄식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1장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거절하십니다. 절기를 싫어하십니다. 분향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왜입니까? 제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안 지켜서가 아닙니다. 너무 열심히 지켰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제사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
이만큼 드렸으니 복을 받아야지.’ ‘이 정도 했으면 하나님도 만족하시겠지.’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은혜가 아니라 계산입니다. 사사기 시대 미가의 집이 떠오릅니다.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워 놓고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을 주시겠지”라고 말하던 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지만, 종교 행위는 완벽했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고발하는 유다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때리십니다. 그러나 매는 심판이 아니라 돌아오라는 신호였습니다. “
어찌하여 더 맞으려느냐?”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도, 그들은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땅은 황폐해지고, 성읍은 불타며, 남은 것은 겨우 포도원의 망대 같은 흔적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의 끝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많은 제사입니까? 더 철저한 종교 행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8장은 말합니다.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 네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네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니다.' 구약의 제사는 짐승의 피를 흘리는 제사였습니다. 그 짐승을 누가 잡습니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직접 잡습니다. 피가 튀고, 몸에 묻고, 그 현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에 남아야 할 고백은 하나입니다. “내가 죽어야 했는데, 죄 없는 존재가 나 대신 죽었다.” 이 중심을 잃어버린 제사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욕망을 포장한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여전히 예배하고, 헌금하고, 주일을 지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어린양의 피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나는 정말 죽은 자로 서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거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고발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남겨 두십니다. 심판 속에서도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더 깊이 알아가는 자리 되기를, 그래서 더 이상 고발이 아니라 참된 회복의 증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