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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이사야

이사야 - 시험하시는 돌,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십니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8.

이사야 28장 14~29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28:16)


어느 젊은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아침 출근길,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5분,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자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지금 늦는 거야." 그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자기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인 줄 머리로는 깨달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버스가 늦자 또다시 화가 났다고 고백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초상화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런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이 기준이 우리 안에서는 곧 선악의 기준으로 둔갑해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 내가 속한 단체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하고 목숨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다 원수라 하시며, 심지어 부모와 자식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이런 예수님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28장은 지난 장에서 에브라임의 교만을 책망하신 데 이어, 이제 예루살렘의 교만을 겨냥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향해 "
경만한 자들"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우리는 사망과 음부와 언약하였으니 어떤 재앙이 와도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는 자들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와도 애굽과 동맹을 맺어 놓았으니 걱정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도 종종 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세상의 힘과 인맥으로 교회를 지키려 하고, 교인의 숫자를 세력화의 도구로 삼으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국제정세를 읽고 힘 있는 자와 손잡아 살아남으려 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심판을 자초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의 방식으로 한 가지를 예고하십니다. "
내가 시온에 한 돌을 세우리라." 이 돌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귀한 기초석입니다. 그런데 이 돌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이 돌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돌은 누군가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시험하는 돌이 됩니다.

같은 돌 앞에서 어떤 이는 딛고 서서 안전해지고, 어떤 이는 걸려 넘어져 무너집니다. 이사야 8장에서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피난처를 의지하든 그것을 믿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에게 그 여호와는 오히려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 돌이 이런 이중적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돌이 인간의 본심을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영광만 챙기는 우리의 실체를, 이 돌이 여지없이 폭로합니다. 그 본심을 들킨 자들이 어찌 예수님을 가만히 둘 수 있겠습니까? 결국 "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역설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시편 118편은 이 돌을 "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 부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담을 쌓을 때 쓸모없는 돌은 던져 버립니다. 우리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는 굳이 가까이 지낼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세상의 셈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버림받은 돌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성공과 안정, 내 사업과 자녀의 앞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십니까? 냉정히 말하면 세상 살아가는 일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주님 스스로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셨고,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의 성공과 형통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느 동양철학 강연자가 성경의 하나님을 두고 "
자기 말만 들으라 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신"이라 비판하며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노자의 도는 모든 것을 낳으면서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선언하십니다. 세상의 눈에는 이것이 옹졸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실하고 배타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쓸모없다며 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세속적 형통을 보장해 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 백성 삼아 온전히 소유하시려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직접 인용하십니다. 포도원 농부에게 종들을 보냈으나 다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자 그마저 죽이려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죄에 붙들린 인간의 민낯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가 아닙니다. "죽여 주옵소서,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것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에게 용서란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예수 죽으셨네" 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다가 예배가 끝나고 누군가 작은 봉사 하나를 부탁하면 "내가 왜 그걸 해야 하나, 내가 그럴 사람인가" 하며 자존심을 세웁니다. 방금 벌레였다가, 순식간에 존귀한 사람으로 돌변하는 이 모순이 바로 우리 신앙의 얄팍함을 보여줍니다. 로마서 9장은 이를 정확히 짚습니다. 이방인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자기 행위와 자존심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베드로전서 2장은 이 버림받은 돌에게 나아온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만이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돌, 아무 쓸모없어 던져진 그 돌에게 우리가 나아와 붙을 때, 우리는 산 돌이 되어 하나님의 집,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세상이 버린 돌 위에 세워진 집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돌을 결코 붙들지 못합니다.

본문 17절 이하는 이 돌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의 결말을 그립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은신처가 낱낱이 드러나 심판받습니다. 마치 침상이 짧아 몸을 펴지 못하고 이불이 좁아 몸을 감싸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23절부터 이어지는 농사의 비유가 인상 깊습니다. 농부는 밭을 갈기만 하지 않고 반드시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거둡니다. 곡식의 종류마다 파종법과 타작법이 다르듯, 하나님도 각 민족과 각 사람을 향해 정밀하게, 그러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심판하십니다. 도리깨로 떠는 곡식이 있고 수레바퀴로 타작하는 곡식이 있지만, 어느 것도 알곡을 부수는 법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자비한 파괴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정확히 알아보시고 끝까지 보호하시는 세심한 손길임을 보여줍니다.

시온에 세우신 돌, 시험하는 돌, 건축자가 버린 돌, 이 모든 이름이 가리키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과 세상의 언약을 의지하며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는 자는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버스를 기다리던 그 청년처럼, 우리 각 사람 안에는 "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교만이 있고, 결국 나의 유익과 손해를 진리의 잣대로 삼으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잣대를 내려놓고 이 버려진 돌, 쓸모없어 보이는 이 돌에게 나아와 자신을 온전히 의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기초 위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삶에는 범사에 넘치는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이 풍성한 삶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전서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