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26장 1절~27장 1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이사야 26:1~4,9)
프랑스 북동부 국경을 따라 세워진 마지노선을 아십니까? 1930년대, 프랑스는 독일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쏟아부어 거대한 요새선을 건설했습니다. 콘크리트로 겹겹이 두른 벙커, 지하 철도로 연결된 탄약고,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지하 도시.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누가 보아도 난공불락의 성곽이었습니다. 그러나 1940년, 독일군은 이 거대한 성벽을 정면으로 부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회했습니다. 아르덴 숲을 통과해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들어왔고, 마지노선은 단 한 번의 결정적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 견고해 보이던 성벽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쌓은 모든 성곽의 운명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아무리 두껍고 높아도, 결국은 무너지거나 우회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 26장은 이와 정반대되는 성곽 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곽, 사람의 손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으로 세워진 성곽입니다.
이사야 25장에서 모압은 심판을 받아 거름더미처럼 짓밟힙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유다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실 것이라." 흙과 돌로 쌓은 성벽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 그 자체가 성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성곽을 믿고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한 전도사님이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닌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와전되어 "문 잠그지 말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려라"는 이야기로까지 번져 곤란을 겪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만, 그 전도사님의 본래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내 집의 자물쇠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의 성곽이 되신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셨습니다. 방패도 하나님, 성곽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성곽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사야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2절)입니다. 둘째, 심지가 견고한 자(3절)입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형편이 좋을 때는 제 힘으로 사는 척하다가, 위기가 닥쳐야만 "주여!" 하고 부르짖는 그런 신앙이 아닙니다. 언제나,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 삶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시계방 주인 코리 텐 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자신의 집 벽 뒤 은밀한 공간에 숨겨주다가 발각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코리의 언니 베시는 수용소에서 이가 들끓는 침상을 두고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간수들이 그 방에 들어오길 꺼려했고, 덕분에 그들은 몰래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벽은 다 무너지고 자유는 박탈당했지만,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성곽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뢰였습니다. 베시는 결국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코리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구덩이라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깊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심지가 견고한 자의 신앙입니다.
반면 5~6절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성곽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 높은 성을 쌓은 자들, 그들의 크고 견고한 성은 헐려 땅의 진토가 되고, 빈궁한 자와 곤핍한 자의 발에 밟히게 됩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역전입니다. 가장 낮고 힘없는 자들이, 가장 높고 견고했던 것을 밟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이 원리를 증언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 약속을 신뢰할 때는 구원을 얻었지만, 자기 힘을 의지하거나 주변 강대국과 정략적 동맹을 맺을 때는 오히려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지노선처럼, 사람이 쌓은 성벽은 언젠가 우회당하거나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성곽은 시대를 우회해서 공격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더 깊은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의를 배우고, 어떤 사람은 배우지 못합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10절). 똑같이 해를 보고 비를 맞아도, 어떤 사람은 그 은혜 앞에서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룻기가 이 대조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으로 이주했던 나오미의 가정은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마저 죽어 세 명의 과부만 남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이 말을 들은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오히려 나오미를 따라나섭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몰락한 집안, 심판받은 것처럼 보이는 가정을 따라간 것입니다. 무엇이 룻을 붙들었을까요? 심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의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룻을 통해 예수님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심판의 자리에서도 주님을 붙든 자가 결국 구원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이방 왕의 신상 앞에 절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사자굴과 풀무불이라는 실제적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구원의 결과를 보장받아서가 아니라, 이미 자신들의 성곽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잘된다"는 말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저주받아 죽으신 사건입니다.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지신 죽음입니다. 그 십자가를 전하면서 곧바로 다른 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십자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룻도, 다니엘의 세 친구도 형통을 보고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판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배웠기에 따른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19절부터 27장 1절까지는 최후의 심판을 그립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들의 피가 드러나며, 마지막으로 옛 뱀이요 마귀인 용이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이 바로 이 장면의 완성입니다. 이사야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일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20절에는 뜻밖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심판이 몰아치는 그 짧은 순간, 성도에게 허락된 것은 영웅적 저항이 아니라 잠깐의 숨음입니다. 이 역시 우리 힘으로 심판을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곽 안에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마지노선은 결국 박물관의 유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노래한 "여호와의 구원으로 쌓은 성곽"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콘크리트도 아니고, 자물쇠도 아니고, 통장의 잔고도 아니고, 사람들의 인정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향한 신실한 신뢰, 그것이 우리의 성곽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성곽으로 삼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나의 자산과 인맥과 건강을 성곽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여호와의 구원을 나의 성곽으로 삼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그 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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