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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이사야

이사야 - 폐허가 된 궁전과 무너진 교만, 이사야 13장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 치게 하리니,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이사야 13:6,9,11,17~18)

주전 539년 어느 밤, 바벨론 궁전에서는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귀족 천 명을 불러 모으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획해 온 금은 그릇에 술을 채워 마셨습니다. 악사들의 연주 소리, 웃음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궁전 벽을 타고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그날 밤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화려한 제국이 그날 밤 안에 무너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사건이 있기 약 150년 전에, 이미 이 결말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13장은 그 예언의 시작입니다. "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는 이사야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펼 때 은근히 위로와 축복의 구절을 먼저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독해 보면, 위로의 말씀보다 죄와 심판을 다루는 분량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서만 보아도 12장까지는 구원의 노래가 흐르지만, 13장부터 23장까지 무려 열한 장에 걸쳐 열국에 대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어느 목회자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죄와 심판을 설교하면 성도들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하지만 위로와 축복을 설교하면 다들 '아멘'을 크게 외칩니다." 이것이 오늘날 강단이 처한 현실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전하다 보니,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얼마나 진노하시는지 점점 무뎌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고 책망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인기와는 거리가 먼 말씀, 곧 심판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13장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통찰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이는 그분이 "
만군의 여호와", 곧 온 세계 만민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보여줍니다.

바벨론이 심판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채찍과 몽둥이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자신이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강하고 위대해서 승리했다고 착각했습니다. 마치 대패질을 하는 목수의 손에 들린 대패가, 마루가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고 "
내가 참 잘났다"고 우쭐대는 격입니다. 대패는 그저 목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인데 말입니다. 바벨론의 교만은 바로 이 착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메대와 바사의 군대를 소집하시는 장면을 그립니다. 마치 사령관이 열병식에서 병사들을 사열하듯, 하나님은 당신의 진노를 쏟아부을 군대를 친히 검열하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심판의 도구로 부름받은 나라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나라 메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받았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그 자격조차 잃어버린 것입니다.

본문은 이 심판의 날을 "
여호와의 날"이라 부릅니다(6, 9절). 그리고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애곡하라." 얼마나 두려운 심판이기에 애곡부터 명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전능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살리실 능력을 가지신 그분이, 오히려 멸망을 선포하신다면 그보다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대국 바벨론이 손이 피곤해지고 마음이 녹아내리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심판받는 결정적 이유는 무엇입니까? 11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
교만, 오만, 강포한 자의 거만."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하면 살인이나 도둑질처럼 눈에 보이는 흉악한 행위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죄는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무엇입니까? 자기를 높이고, 자기 행위에 가치를 두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모든 시도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몸짓, 그것이 교만입니다. 이 죄가 얼마나 근원적인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도 결국 "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함이었습니다. 교만은 아담의 후손 모두에게 유전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뿌리 깊은 죄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재해와 미신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
못 할 일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고, 우주선이 화성을 향해 날아가는 시대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 이 경쟁을 우리는 죄라 부르지 않고 "발전"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것의 뿌리에 교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19세기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에게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무디가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한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 여행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성경이 진실하다는 증거를 보여주면 예수를 믿겠소." 그러자 무디가 물었습니다. "최근에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여행가는 "이라크 지방, 옛 바벨론 터"라고 답했습니다.

무디는 그곳의 모습을 물었고, 여행가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
그 화려했던 바벨론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람 하나 살지 않았고, 어느 밤 궁전 터 근처를 산책하는데 들짐승들이 몰려와 울부짖더군요." 그 말을 들은 무디가 조용히 이사야 13장 20~22절을 펼쳐 보였습니다. 여행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본 광경 그대로입니다!"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한 것은 주전 700년경입니다. 그로부터 무려 2,6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옛터는 여전히 폐허로 남아 들짐승들의 거처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집니다.

바벨론의 교만을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재물이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귀인 천 명을 불러 잔치를 벌일 만큼 부유했고, 예루살렘 성전의 금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오만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13장 17절은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메대 군대가 쳐들어올 때, 그들은 "
은과 금을 돌아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전쟁은 이익을 위해 벌어집니다. 정복자는 금은보화를 챙기고, 항복한 자는 재물을 바쳐 목숨을 구걸합니다. 그런데 메대 군대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쓰임받고 있었기에, 바벨론의 그 화려한 금은보화조차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온 재산을 걸고 소송에서 이기려 했지만, 정작 판사가 뇌물 자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바벨론이 그토록 의지하던 재물이, 심판의 날에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당연하게 통용됩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쌓으면서 점점 더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에는 그 어떤 재물도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뇌물을 바쳐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에는 오직 한 가지, 겸손히 주님을 의지했는가만이 물음이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은 단지 고대 제국 하나가 무너진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이 심판을 묘사하면서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10, 13절). 이런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 언제나 마지막 종말의 심판을 가리킬 때 등장합니다. 즉 바벨론의 역사적 멸망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최후 심판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 세상이 말하는 성공, 출세, 재물의 많음, 이런 것들이 내 마음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세상이 좋다 하는 것, 출세라 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히려 마음을 낮추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출 때에야 비로소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진짜 겸손, 곧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바벨론의 화려한 궁전 터에서 들짐승이 우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바벨탑도 언젠가 무너집니다. 그러나 낮아진 마음으로 십자가를 붙든 자는,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