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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이사야

이사야 - 하나님의 경영, 세상의 경영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이 경고가 임하니라.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이사야 14:24~32)

한 대기업의 총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서류를 결재하며, 그는 말 그대로 세계를 경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부지런함과 야심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그는 회장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세계를 경영하겠다던 사람이, 정작 자기 회사 하나를 경영하지 못해 무너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씁쓸하게 웃습니다. 그리고 곧 깨닫습니다. 우리도 크든 작든 매일 '경영'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더 좋은 물건을 사려고, 더 나은 자리에 오르려고, 더 안정된 미래를 확보하려고 계산하고 애쓰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공기입니다.

스마트폰은 해마다 새 모델이 나오고, 어제까지 최신형이던 것이 오늘은 구식이 됩니다. 우리는 그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며 삽니다.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처럼,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은 바로 그 조류 한복판에 서 있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그 시대를 지배한 것은 앗수르라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거대한 제국 앞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
내가 경영하였은즉 반드시 이루리라."

2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원래 맹세하지 않으셔도 그 말씀대로 이루어 내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맹세하는 것은 자기 말의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의 맹세는 정반대의 이유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흔들릴 수 없는 결정을 향한 하나님의 단호함의 표현입니다.

마치 어떤 아버지가 아이에게 "
약속할게, 손가락 걸고 약속할게"라고 말할 때, 그 손가락 거는 행위 자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듯, 하나님의 맹세도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거센 물살 앞에서 흔들릴 때,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걸고 "내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경영의 구체적인 내용이 2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이스라엘 땅에서 파하고 밟아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사야 37장에 가면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죽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천사 하나가 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첨단 무기와 정보력으로 무장한 초강대국들의 뉴스를 접하며 삽니다. 항공모함, 핵잠수함, 첨단 미사일, 그 위세 앞에서 인간은 압도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천사 한 명이면 그 어떤 강대국의 대군도 하룻밤 사이에 무너진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힘의 크기를 비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존재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댐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그 댐을 설계하고 세운 이의 손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앗수르는 자신이 세계를 경영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막대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이사야 10장은 이 앗수르의 교만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도끼가 어찌 도끼질하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도구가 도구인 것을 잊고 자신이 주인인 줄 착각하는 순간, 심판은 예비된 것입니다.

29절에서는 무대가 블레셋으로 옮겨갑니다. 블레셋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앙숙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블레셋은 환호합니다. 자신들을 압박하던 강대국의 왕이 사라졌으니 이제 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어떤 위협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곧바로 안도하며 샴페인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그 뿌리에서 뱀이 나고, 그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하나 넘어가면 또 다른 것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은 앗수르라는 특정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암 진단을 받았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힘든 치료 과정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을 때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뒤 다른 곳에 재발했습니다. 그가 고백했습니다. "
그때 저는 암이 사라진 것만 보고 기뻐했지, 제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돌아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눈앞의 위협 하나가 사라졌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30절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온 세상이 이렇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가운데, "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리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논리로 보면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먼저 쓰러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이 평안히 눕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2절이 답을 줍니다. "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가진 것이 없어 세상 경영의 판에 낄 수도 없는 자들,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성 안으로 피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붙들 손이 없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손을 꼭 붙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블레셋 사신들이 유다에게 제안을 합니다. 함께 동맹을 맺어 북쪽의 적을 막자는 것입니다. 오늘로 치면 이런 제안과 같습니다. "
예수 믿는 것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안정을 확보하는 것도 함께 챙겨야 하지 않겠니?" 매력적으로 들리는 제안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준비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우리는 그 안에서 피난한다." 세상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이 우리의 안전판이라는 고백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수험생 자녀를 둔 가정에 전화를 걸어 격려하는 밤이 있습니다. "
너는 이미 이긴 자다.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 있는 너에게 진짜 실패란 없다." 이렇게 말해 줄 때,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영을 믿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세상 경영에 뒤처질까 봐 조바심 내는 삶이 아니라, 이미 완성될 집이 예비되어 있음을 알기에 감사할 수 있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에,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탄식합니다. "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새 스마트폰, 새 자동차, 더 넓은 집, 이 모든 것을 좇아도 마음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평가는 얼마나 많이 쌓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나누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세계 경영에 사로잡힌 마음으로는 결코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영 안에 안식을 얻은 사람은, 움켜쥔 손을 펴서 나누어 줄 여유를 얻게 됩니다.

이 말씀의 결론은 단순합니다. 세상의 경영과 하나님의 경영은 부딪힙니다. 우리는 매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삽니다. 세상 경영을 따라가면 끝없는 소비와 경쟁, 그리고 언젠가는 찾아올 부도의 두려움 속에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영을 바라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이 됩니다.

오늘, 당신의 삶은 어느 경영 체계 안에 있습니까? 세계 경영의 조류에 정신없이 휩쓸려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시온을 세우신 하나님,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그 하나님의 경영 안에 피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집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