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가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가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이사야 5:7,12)
어느 마을에 포도 농사에 평생을 바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땅을 찾기 위해 몇 해를 헤맸습니다. 마침내 볕이 잘 들고 물빠짐이 좋은 산기슭 하나를 발견하자, 그는 그 땅의 돌을 하나하나 골라내기 시작했습니다. 돌투성이 밭에서 포도나무가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돌을 다 골라낸 후에는 나라 안에서 가장 좋은 묘목, 극상품 포도나무만을 골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밭 한가운데 망대를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고, 포도가 익으면 곧바로 짤 수 있도록 술틀까지 미리 파두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쏟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첫 수확의 계절이 왔습니다. 노인은 설레는 마음으로 포도송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열린 것은 달고 탐스러운 포도가 아니라, 시고 작은 들포도였습니다.
이사야 5장은 바로 이 노인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노래를 부른다고 하기에 아름다운 사랑 노래인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이것은 고발의 노래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사랑의 노래로 시작해서 탄식과 고발로 끝나는 노래,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성경은 이 포도원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힙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시편 80편은 이 비유를 더 자세히 풀어줍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에 옮겨 심으신 일을, 성경은 포도나무 심는 일에 비유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제 발로 걸어가 스스로 심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 옮기고, 심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라는 비유의 핵심은 이스라엘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옮기시고 심으신 그 손, 곧 하나님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당시 주변 그 어느 지역보다 기름진 땅이었기에 강한 족속들만이 차지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강한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시고 연약한 이스라엘을 그 자리에 심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본문 2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수고를 다시 보십시오. 땅을 파서 돌을 제하셨고, 극상품 나무를 심으셨고, 망대를 세우셨고, 술틀까지 파두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느냐?”
포도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다른 과실나무는 심어놓기만 하면 웬만큼 자랍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반드시 버팀목이 있어야 서고, 해마다 가지를 쳐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마을에 아들이 많아 일손이 넉넉한 집안이 포도밭을 크게 일군 적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땀 흘려 밭을 만들었지만, 정작 심은 포도 종자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일찍 익는 것과 늦게 익는 것이 뒤섞여 도무지 상품 가치가 없는 밭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그 밭은 얼마 못 가 팔렸는데, 그 용도는 다름 아닌 무덤이었습니다. 애써 가꾼 포도밭이 사람 하나 살지 못하는 죽음의 자리로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 사람은 종자를 잘못 골라 실수라도 했다지만, 하나님께서 실수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극상품만 골라 심으신 그 밭에서 들포도가 열렸다면, 이것은 심은 이의 잘못이 아니라 열매 맺은 나무 자체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신 열매는 무엇이었을까요? 7절 하반절이 답합니다.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백성에게서 나온 열매는 세상 나라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포학과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것이 8절에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서 부동산을 사고팔며 자기 배만 불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바로 그 일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더하고, 밭에 밭을 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서가 아니라, 남이야 어찌 되든 나 혼자 이 땅에서 살아남겠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마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있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함께 잘 살아보자는 선한 활동들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끼리 서로 도와 살아보자는 인간적인 연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이 백성에게 내려진 심판이 9절에서 11절에 나타납니다. 크고 아름다운 집들이 텅 비게 되고, 소로 열흘 갈아야 하는 넓은 밭에서 겨우 곡식 한 바트가 나오게 됩니다. 평년에는 그만한 밭에서 오백 바트가 났으니, 오백 분의 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런 경고 앞에서도 이 백성은 아침부터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 잔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자신들의 즐거움에 취해 있었습니다.
12절이 이 백성의 진짜 문제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정작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신앙생활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전도를 해도 내가 전도를 잘했는가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하고 계신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헌신하고 봉사해도 나의 헌신에만 마음이 가 있지, 주님의 헌신은 뒷전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해도 “오늘 내가 설교를 잘했나 못했나”에만 마음이 쏠려 있을 뿐, 정작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고 계신지에는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의 각종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직식이든 은퇴식이든 헌당식이든, 겉으로는 “주님의 은혜”라 말하지만 결국 모든 공로와 감사패는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솜씨와 능력에 스스로 감탄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어 놓았어도, 그 자리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포도원지기가 이 밭을 버려두겠다고, 울타리를 걷어 짐승들이 짓밟게 하고 비를 내리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 깊었던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이 다 채워주었는데도 들포도만 맺힌 그 배신감, 그것이 이 노래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슬픈 노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를 넘어 신약에 이르면, 진짜 포도나무 되신 분이 오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맺지 못한 그 열매, 공평과 의로움을 그분이 십자가에서 몸소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그 참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맺어야 할 열매는 결국 우리의 힘과 솜씨로 만들어내는 성과가 아니라, 그 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저절로 흘러나오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추고, 아무리 화려한 잔치를 벌인다 해도, 그 한가운데 여호와의 행하심을 향한 진실한 관심이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바로 포도원의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참된 자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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