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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움직이는 우상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7.

인간을 설득하는 일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문제를 넘어섭니다. 유창한 언변이나 논리적 완결성만으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오늘날 설득은 기술이며, 그 기술의 핵심은 상대의 의지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알아보는 통찰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자유는 늘 어떤 것에 의해 당겨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각자가 마음 깊숙이 섬기고 있는 ‘우상’입니다.

어떤 이는 명예 앞에서 마음이 열립니다.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자신의 가치를 남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회의 자리에서 아무리 합리적인 제안이라도, “이건 당신이 맡아주셔야 가장 빛이 납니다”라는 한마디가 덧붙여지는 순간, 그의 태도는 달라집니다. 그 제안이 옳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가 거기서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는 이익에 반응합니다. 손해와 이득을 계산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 “의미 있는 일입니다”라는 말은 공허합니다. 대신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실익을 가져오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때, 그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유익’이라는 우상이 서 있는 것입니다.

쾌락을 우상으로 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편안함, 즐거움, 재미, 감정적 만족이 기준입니다. 이들에게 희생이나 책임을 말하면 마음은 즉시 닫힙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이 될지”, “당신의 취향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건드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설득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건드리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설득에는 보이지 않는 순서가 있습니다. 정면 돌파는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성문처럼 단단해서, 이유와 논리를 앞세운 공격에는 먼저 방어부터 작동합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감정의 정돈입니다. 조급함, 분노, 조작하려는 기색이 묻어나는 순간 상대는 즉각 눈치챕니다. 설득자는 냉정해야 하고, 동시에 여유 있어야 합니다. 이때 던지는 짧은 한마디의 자극은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첫 진동’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고집이 완강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상대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공격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마음속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이미 문은 반쯤 열린 셈입니다.

그 다음은 취향과 가치에 대한 정확한 파악입니다. 어떤 말에 미묘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주제에서 눈빛이 살아나는지, 무엇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커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지점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이때의 설득은 힘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상대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때 가장 쉽게 움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야말로 외부의 영향이 가장 깊이 작동할 때입니다. 누군가의 우상, 즉 그를 움직이는 충동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그의 자유의지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셈이 됩니다.

그래서 설득은 언제나 양날의 검입니다. 잘 쓰면 공감을 만들고, 협력을 이끌어내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수단으로 전락시킵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쥔 사람의 의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을 설득하는 기술이란, 말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기술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 앞에서 무너지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마음의 문은 정면에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우상이 서 있는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여는 열쇠를 쥔 사람은, 상대를 움직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술은 연마할수록 더 깊은 책임을 요구합니다. 설득의 진짜 어려움은 상대를 움직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움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데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