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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인간, 무엇이 상실되었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2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로마서 5:12)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묵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또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조적 의미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 가진 이성과 감정, 의지, 창조력 등 존재의 본질적인 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능적 의미, 즉 하나님처럼 이 땅을 다스리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의와 거룩을 실천하는 실제적 능력과 역할입니다.

이를 예로 설명하면,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은 기능이며, 그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날개는 구조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날도록 설계되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그 날개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6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므로 그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도 야고보는 우리 입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고 경고합니다(약 3:9).

헬라어 문법적으로도 ‘지음을 받았다’는 표현은 완료 시제로,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타락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그 형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상은 빛을 잃었고, 목적을 잃었고, 방향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상실되었는가? 인간은 여전히 생각하고 창조하고 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형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랑하며, 의를 행하고, 거룩함을 따르도록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즉 기능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상실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그 재능을 불순종과 자기 숭배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아담의 타락은 단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존재의 중심에서 벗어난, 본질의 상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자로 지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얼굴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지혜로 살아가려는 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잃어버렸고, 그 결과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던 존재였으나, 이제는 그 영광을 가리우는 어두운 그릇이 되었고, 생명의 숨결로 충만했던 영혼은 죄로 인해 죽은 것처럼 말라버렸습니다. 사랑과 신뢰, 교제와 순종이 깨어졌고, 인간은 두려움과 수치, 욕망과 자기중심성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잃어버린 형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찾게 하셨고,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으며,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누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 속에서, 결국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진실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오직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심을 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회복은, 잃은 것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형상을 되찾는 길은, 다시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상실은 그분 안에서만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목소리는 이제 자신을 찬양하고, 다른 이를 섬기기 위한 능력은 그들을 밟고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으며, 피조세계를 다스리기 위한 권세는 그것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창세기 3장은 뱀을 통해 찾아온 유혹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립니다. 그 유혹은 의심으로 시작되고, 분노와 불신으로 이어지며, 결국 교만과 탐욕, 불순종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전면적 반역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전인적 타락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몰랐던 인간은 수치심으로 가득 찼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던 인간은 두려움에 숨어버렸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는 모두 깨어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샘, 생식 기관조차 오염된 수치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즉시 회복의 길을 여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우리는 이것을 ‘원시 복음’이라 부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됩니다.

아담은 실패한 동산지기였습니다. 그는 하와의 죄를 품지 못했고,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동산지기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마리아가 동산지기로 착각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에덴의 제사장 직무를 회복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비록 흐려졌고 부패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반응할 수 있으며, 회개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전히 그분의 형상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잊혀진 본래의 형상이, 성령의 역사로 다시 일깨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형상은 회복됩니다. 그 복은 단지 윤리적 개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관계의 회복이며, 순종과 경배의 회복이며, 참된 목적을 향한 방향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피조세계를 돌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능을 회복할 때, 진정한 인간다움이 드러날 것입니다.

"너희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로새서 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