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세상이 둥글다고 말합니다. 모서리 없이 부드럽게 굴러가며,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완만한 세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말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나는 가끔 세상이 둥글기보다는 몹시도 모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그 모서리에 부딪힙니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말에, 예기치 않은 태도에, 무심코 던진 시선에, 그렇게 자잘한 상처들이 몸과 마음에 남습니다. 그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지 몰라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흉터가 됩니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 더 살아 보니, 하나의 분명한 진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로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은 낯선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몹시 경멸하는 누군가의 말은 우리를 화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타인의 무례한 행동이 잠시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처들은 오래 남지 않습니다. 마치 잠깐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병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반면,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오래도록 아프게 하는 상처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옵니다. 가족의 말 한마디, 사랑하는 사람의 무심한 태도, 믿었던 이의 외면, 그 상처는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우리를 전율하게 하고, 삶 전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마음을 주지 않은 사람의 말은 깊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상처의 깊이는 사랑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낯선 사람들에게는 유독 조심스럽습니다. 처음 만난 이에게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공손한 말투를 고릅니다. 얼굴에는 미소를 얹고, 말 한마디에도 예의를 담습니다. 반면, 이미 우리 곁에 오래 머문 사람들에게는 그 경계가 쉽게 무너집니다. 무신경한 표정, 날 선 말,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아무렇지 않게 오갑니다.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안일함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합니다.
사랑은 저절로 잘 자라지 않습니다. 모든 나무가 해마다 꽃을 피우지 않듯, 진실한 마음도 돌봄 없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될 것이라 기대할 때, 우리는 관계를 방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치는 결국 상처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게 쌓인 상처는 때로는 무덤을 가로지르듯 깊어져,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깨달음에 이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고, 아프기 때문에 더 사랑의 본질을 배운다는 사실입니다. 상처는 관계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슬픔을 끝까지 견디고 나면, 결국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한 사람은, 동시에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에게, 나는 가장 조심스러운 마음을 쓰고 있는가. 인생의 흉터가 더 늘어나는 삶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성숙해지는 삶을 선택할 수는 없는가.
어쩌면 성숙한 사랑이란, 상처를 주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상처를 자각하고 다시 품을 줄 아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배워 가는 과정 자체가, 이 모난 세상 속에서 우리가 걷는 가장 인간다운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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