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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4)

어느 날 한 교사가 교단에 섰습니다. 그날따라 학생들은 그와 함께 호흡했습니다. 질문이 오가고, 생각이 부딪히고, 배움이 일어났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가르치기 위해 태어났구나.'

며칠 후, 같은 교사가 같은 교실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고, 그의 말은 허공을 맴돌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교사가 되지 말 걸.'

이 두 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흔히 실패의 순간에 무언가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완벽해져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고,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마치 하늘 어딘가에 완벽한 교사, 완벽한 부모, 완벽한 나의 모습이 있어서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제가 아는 하나님은 칠판에 점수를 매기는 교장선생님이 아닙니다. 손에 자를 들고 우리가 기준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 재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될 때부터 가진 본성 그 자체를 존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능력도, 한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답하셨습니다. '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있는 존재'라고 하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면, 우리 역시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비도덕적으로 들리시나요?

천만에요. 도덕은 우리가 억지로 손 내밀어 붙잡아야 할 어떤 먼 곳의 기준이 아닙니다. 도덕적 결과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신의 본성을 따를 때, 그리고 타인과 세상의 본성을 존중할 때 말입니다.

그 교사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학생들과
'춤출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질문을 던지고 받으며, 함께 생각의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그와 함께 춤출 때는 마법 같았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춤추기를 거부할 때는 어떨까요? 처음에 그는 화가 났습니다.
'왜 너희는 나와 춤추지 않는 거야?' 그는 학생들을 원망했고, 방어적이 되었고, 춤추자는 초대를 거두어들였습니다.

전환점은 이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이 강점의 그림자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는 함께 춤추는 데는 뛰어나지만, 혼자 서 있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이것이 그의 한계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 춤추는 법을 억지로 배워서 자신의 본성을 거스를까요? 아닙니다.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춤추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품위 있게 대하는 법을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초대하되, 그들이 거절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영혼에 구멍이 있어서 그것을 시멘트로 메워야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 구멍을 잘 알아서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춤추는 교사가 혼자서도 잘 춤추는 교사가 되려고 애쓴다면? 아마 함께 춤추는 재능마저 잃어버릴 겁니다.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순간, 현실의 힘이 우리를 막아섭니다. 등 뒤에서 길이 닫히는 것입니다.

한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이 선해지는 것보다 완전해지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깨닫는 것은, 화려한 면허증을 버리고 험하고 좁은 길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무슨 뜻일까요? 선함이란 외부의 기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함이란 자신의 본성에 온전히 충실한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한계까지 포함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도덕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본질, 근원 시스템에 고요히 거하십니다. 추상적인 이상향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현실 속에 계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본성이 아닌 것을 따르려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거스르지 말고 존중하며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사는 다시 교단에 섭니다. 여전히 어떤 학생들은 춤추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압니다. 그것이 자신의 한계라는 것을, 하지만 그 한계가 자신의 재능과 한 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계속 음악을 틉니다.

초대를 거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그 음악을 듣고 댄스 무대에 함께 설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말입니다.

"온전함은 완벽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충실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