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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전도서 - 영원히 있을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7.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도서 3:14~15)

1940년대 후반, 뉴욕 맨해튼의 한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딴 빌딩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밤잠을 줄여가며 도면을 그렸고, 수십 년에 걸쳐 마침내 그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준공식 날, 그는 흐릿해진 눈으로 건물 외벽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여기 남는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세상을 떠났고, 건물은 수십 년간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 재개발 계획이 확정되었고, 포클레인 한 대가 며칠 만에 그 건물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름이 새겨진 외벽 돌덩이는 도시 외곽의 어느 폐자재 처리장에 쌓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특별히 비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전도서는 첫 장을 열자마자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선언은 허무주의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직한 관찰입니다. 우리가 붙잡으려는 것들, 명예, 재물, 업적, 관계, 심지어 기억까지도 시간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이 책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까닭은, 헛된 것들 사이에서 헛되지 않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4절에서 그 목소리는 명료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리고 15절은 덧붙입니다. "지금 있는 것은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전체를 뒤집는 선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원을 갈망합니다. 자신이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자신이 만든 무언가가 자신보다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이 갈망 자체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심어두신 것입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영원을 향한 갈망을 영원하신 분께로 돌리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 영원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것이 바벨탑이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려는 인류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했던 그 시도는, 이후 모든 시대의 모든 바벨탑 건설자들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두로의 왕이 그랬습니다. 에스겔 28장은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지혜로 무역하여 재물을 쌓고, 아름다운 성을 이룬 뒤, 마침내
"나는 신이라"고 선언한 자입니다. 나일강을 바라보며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한 이집트의 바로 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쥐고 있다는 선언, 이것은 에덴에서 뱀이 건넨 유혹이 왕좌 위에서 다시 반복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왕을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의 도구로 쓰인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역시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4장의 장면은 이 반복의 절정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궁궐 지붕 위를 거닐다가 말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고,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 들판을 헤매며 짐승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느부갓네살 같은 권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규모만 다를 뿐 마음의 구조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열심히 쌓아올린 커리어, 공들여 만든 평판,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름, 그것들이 위협받을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저항감, 그 저항감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느부갓네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곱 때가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총명이 돌아왔습니다. 그가 고백한 내용은 전도서 3장의 언어와 놀랍도록 겹칩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는 일은 바로 이 진리를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인간이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는 고백, 그것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인간의 무력함을 선언하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마가복음 4장의 비유가 이 물음에 답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립니다. 이것은 그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농부가 하는 일은 그저
"자고 깨고" 하는 것입니다. 씨는 스스로 자랍니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농부가 더 애를 쓴다고 빨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의지와 노력이 결과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물론 세상의 일에는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썩지 않을 것, 영원히 있을 것에 관한 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갈라디아서 6장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영원한 것을 심고 거두는 일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유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우리가 보태지 않아도 그 일은 이루어진다는 확신, 그러므로 우리는 씨를 뿌리고, 그리고 잘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5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시공간 바깥에 계신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완성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모세는 홍해를 건넌 뒤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은 그들이 발을 딛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 안에서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관점은 우리의 일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몸이 쇠하고, 기력이 줄고, 세상에서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을 바라볼 때 찾아오는 그 슬픔, 바울은 그 슬픔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합니다. 보이는 것이 잠깐이라면, 잠깐 잃어가는 것에 전부를 걸 필요는 없습니다. 겉사람의 쇠함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면, 잠시 멈추어 속사람이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처소의 예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처소는 사람의 손으로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이며, 그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연합, 이 내주함이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루시는 가장 깊은 일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은 이것이 우리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영원 전부터 이미 계획된 은혜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드러났습니다. 땅의 먼지 같고 아침 안개 같은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담으시는 일, 그것을 하나님은 이미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두셨습니다.

유다서의 마지막 찬양은 이 모든 진리를 한 문장으로 담아냅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이 세 개의 시간이 하나로 품어지는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행하시는 일만이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맨해튼의 그 건물은 무너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바벨론도 사라졌습니다. 두로의 왕이 쌓은 부는 흩어졌고, 이집트의 바로가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나일강은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 그분이 이루어가시는 구원,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시는 그 처소는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복된 자리는 그 영원하신 분의 일하심을 알고, 그분을 경외하며, 우리가 아무것도 보태거나 뺄 수 없는 그 은혜 앞에 다만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