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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사사기 - 쫓아내지 못한 것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3.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1)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사사기 1:16~21)

우리는 흔히 믿음을 착각합니다. 믿음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가'로 이해하곤 합니다. 마치 믿음이 나의 태도와 노력으로 측정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믿음이 나의 태도라면, 구원도 결국 나의 노력에 달린 것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이 전적으로 주님의 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믿음도 주님의 의 자체여야 하지, 나의 태도와는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 완전한 구원의 능력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태야 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나의 무언가를 보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기까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거민들을 모두 쫓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만 사랑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유다 지파는 산지의 거민은 쫓아냈지만,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쫓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읽으며
'아, 철병거가 무서워서 못 쫓아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보면 다른 이유가 드러납니다. 28절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남겨둔 것입니다. 철병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왜 성경은
'쫓아내지 않았다'가 아니라 '쫓아내지 못했다'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치'라는 힘에 굴복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철병거를, 하나님의 뜻보다 눈에 보이는 실용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한 증거였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여호와만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다면, 아무리 철병거가 유용해 보여도 주저 없이 쫓아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에서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보다 현실을, 믿음보다 실용을 선택한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돈이 있었기에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은혜'보다 '내 통장 잔고'가 더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 안정적인 직장, 넉넉한 재산... 이것들이 우리에게는
'철병거'입니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이런 것들은 붙들고 하나님을 쫓아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쫓겨나야 할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 우리 마음에서 쫓겨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 것인가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내가 살아가는 데 진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리고 전투 후 아간이 금과 은을 훔쳤을 때, 그것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하나님의 능력'보다 '여리고의 재물'을 더 신뢰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묻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쫓아내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내 수중의 돈보다, 내 직장이나 집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큰소리칩니다. 힘 있는 자가 행세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에는 큰소리칠 자가 없습니다. 행세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 마음에 담고 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돈 많은 자, 권력 있는 자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야 합니다. 교회가 쫓아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보다는 돈이 더 힘이 세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쫓겨나야 합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크게 보입니까? 세상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입니까? 당신의 마음이 무엇에 끌려갑니까? 세상의 성공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입니까? 세상에서 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는 가치 없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천국 백성으로 남는 것에 간절함이 있다면, 그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