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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민수기 - 장자들의 나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데려다가 정결하게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그들에게 수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가져오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가져오고,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게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 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민수기 8:5~13)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만납니다. 민수기 8장도 그런 경우입니다. 보통 제사를 드릴 때는 제사장이 제물에 손을 얹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순서가 뒤바뀝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에게 손을 얹고, 레위인이 다시 제물에 손을 얹습니다. 마치 사람을 제물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은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이 의식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출애굽의 밤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애굽의 마지막 밤, 모든 집의 장자가 죽어갔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첫째로 태어난 생명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만은 달랐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어린 양이 대신 죽었기에 장자가 살았습니다.

그날 밤 이후, 살아남은 모든 장자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죽었어야 할 목숨이다. 어린 양의 희생으로 살아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장자들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장자의 자리는 참 복잡합니다. 혈통으로 보면 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입니다. 능력도 있고 위풍도 당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고, 장자의 자리를 잃었습니다. 결국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형제들을 먹여 살리며 장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유다도 베냐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자는 태어난 순서가 아니었습니다. 희생으로 형제를 살리는 사람, 그가 진짜 장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를 선택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이 모든 장자를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성막에서 봉사하며 백성을 위해 속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8장의 의식은 더 놀라운 진실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이 레위인에게 안수할 때, 사실은 백성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레위인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진 장자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대표적 희생이 전체를 포함합니다. 레위인이 드려질 때 모든 백성이 함께 드려집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

수천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진짜 장자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로 오셨습니다(로마서 8:29). 그분은 혈통의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희생의 장자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형제들을 살리신 분, 그분이야말로 모든 장자의 실체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애굽의 장자들을 살렸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민족의 장자들을 살렸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그림자였고, 예수님이 실체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놀라운 표현을 씁니다.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총회"(히브리서 12:23).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장자들의 모임이라고 부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본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장자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덮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넘어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장자입니다. 죽었다가 산 사람들, 대신 죽으신 분의 피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장자들의 총회에 속한 사람들은 특별한 담대함을 갖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히브리서 12:28).

세상은 흔들립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관계가 깨지고, 건강이 약해집니다. 우리가 붙잡았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한 번 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흔들리는 것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의 피 안에 감추어졌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 불이 모든 것을 태워도 담대한 사람들, 죽음 앞에서도 평안한 사람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미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참 장자의 희생으로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의 레위인들이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졌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이미 드려진 사람은 잃을 것이 없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자들입니다.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른 사람들, 희생의 피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장자들의 총회, 하늘에 등록된 그 이름들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