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레위기 1:3)
레위기를 펼치면 수많은 제사 규례들이 나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오늘날 우리에게는 낯설고 고루하게만 느껴지는 이 규정들을 하나님은 왜 그토록 자세히 기록하셨을까요? 혹시 우리도 옛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겉모습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은 늘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가리킵니다. 성전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제사 의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제사 제도를 폐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형식은 지켰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장 3절의 "흠 없는 수컷"이라는 짧은 구절 속에는, 우리가 평생 묵상해도 다 깨닫지 못할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흠 없는" 재물을 바치라는 명령은 언뜻 보면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라는 단순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실제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이것은 "너희는 결코 흠 없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흠 없는 제물을 준비하려면 얼마나 까다롭게 살펴야 했을까요? 작은 상처 하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피부병 하나도 그 제물을 부적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눈먼 것이나 버짐이 있는 것이나 똑같이 '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의 비교와 차등이 얼마나 무의미한지가 드러납니다. 세상에서는 "나는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습니다. 조금 더 착하게, 조금 더 성실하게, 조금 더 도덕적으로 살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그런 차이가 무색해집니다. 작은 흠이든 큰 흠이든, 흠은 흠입니다.
이것은 절망적인 선언일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엄청난 해방이기도 합니다.
흠 없는 제물 규정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비교의 종말'입니다. 교회 안을 들여다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비교와 차등이 존재합니까? 더 많이 헌금하는 사람, 더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 더 오래 신앙생활 한 사람...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 서열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서열 속에서 누군가는 교만해지고 누군가는 위축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그 모든 차등이 무너집니다. 평생 교회 다닌 장로님이나 어제 처음 온 불신자나,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똑같이 '흠 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깨달음이 진정으로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해"라고 판단할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해"라고 위축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제사 규정은 "흠 없는" 것뿐 아니라 "수컷"을 요구합니다. 이것 역시 단순한 성별 규정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수컷, 특히 처음 난 수컷은 여호와의 소유로 구별됩니다. 이집트 탈출 때 장자 재앙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처음 난 것이 당신의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수컷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것은 원래부터 당신의 것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모리아 산을 떠올려보십시오. 아브라함의 헌신과 순종이 감동적입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대신 죽은 '수양'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이삭의 순종도 아니라, 그 수양의 피가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우리의 헌신, 우리의 열심, 우리의 노력을 내세우려 합니다. "저는 이만큼 봉사했습니다", "저는 이만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만큼 헌금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보다 귀한 것은 오직 '희생의 피'입니다.
이 모든 제사 규정은 결국 한 분을 가리킵니다. 흠도 점도 없으신 분, 여호와의 것으로 완전히 구별되신 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완전한 제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흠 없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덮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흠 없는 자'로 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흠 없는 제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달라집니다.
세상은 성공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가졌는가, 어떤 지위에 있는가. 하지만 성도는 다른 것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바로 '거저 주신 용서의 은혜'와 '십자가'입니다.
내가 이룬 것이 아무리 초라해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가슴에 품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수컷 제물이 원래부터 여호와의 소유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값 주고 산 바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말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십자가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지루하지 않습니까? "또 그 얘기야?"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위험한 신호입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가 지루하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잊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값을 누군가 대신 치러주셨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흠 없는 제물의 의미를 놓쳤다는 뜻입니다.
사형수가 사면장을 받았는데 그것을 지루해할까요? 불치병 환자가 완치 소식을 듣고 심드렁할까요? 십자가는 바로 그런 소식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흠투성이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전혀 없던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성도는 이 복음이 항상 새롭고 감격스러운 사람입니다. 천 번, 만 번 들어도 감사한 사람입니다.
이 진리를 붙잡고 사는 사람의 삶이 세상에서 화려해 보일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도의 길은 때로 외롭고 초라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좇다가 손해를 보고, 진리를 붙들다가 오해받고, 사랑하다가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이 길을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를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성공보다 더 귀한 것,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용서와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 의를 내세우려는 마음'과 싸우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인정받아야지'라는 생각과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교만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고백합니다. "나는 흠 없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흠 없는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레위기 1장 3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흠 없는 수컷." 이것은 단순한 제사 규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흠투성이입니다. 서로 비교하며 차등을 만들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완전한 제물이 우리를 위해 드려졌습니다. 흠도 점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달라집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절망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감사하며, 그 사랑에 빚진 자로, 겸손히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진리를 붙잡고 걸어갑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길일지라도, 예수님의 피를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감사함으로 갑니다.
이것이 레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흠 없는 수컷"이라는 짧은 구절 속에 담긴, 평생 묵상해도 다 깨닫지 못할 깊은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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