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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이사야(01) - 경솔한 자들에게, 생각하지 않음이라는 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7.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3)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하나님은 분노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는 고발보다 탄식이 먼저 들립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 외침은 정의가 무너졌다는 법정의 선언이 아니라, 자식을 바라보는 상처 입은 부모의 떨리는 음성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이것은 배신당한 왕의 분노가 아니라, 정성껏 키운 자식에게서 등을 돌려 당한 부모의 슬픔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단지 정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죄의 결과보다 먼저 우리를 잃어버린 슬픔을 겪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슬퍼할 때, 하나님도 그 죄를 슬퍼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출발점이며, 회개의 문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책망하시는 것은 살인이나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알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 문제는 경솔함, 곧 생각하지 않음입니다. 사람이 실수할 수는 있습니다. 약해질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심각한 허물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는 얼마나 계산적인가, 이익이 걸린 일 앞에서는 밤을 새워 고민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며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창조하시고, 오늘도 숨 쉬게 하시며,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삽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요. 왕을 무시하는 신하가 있다면 그는 반역자입니다. 은혜를 베푼 이를 잊는다면 그는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 매일 생명을 유지해 주시는 하나님, 여전히 화해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삽니다. 하나님이 악한 분이셨다면 이 정도의 무관심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사랑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피하는 인간의 모습은 죄의 기이함과 타락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더 슬픈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경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지 않습니다. 지나온 죄를 깊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현재를 살면서도 마치 인생이 영원과 무관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그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묻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영원한 심판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처럼 밀어냅니다.

사람은 마치 절대로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삽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갑니다. 자신의 영혼을 진리의 저울에 올려놓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경솔함은 결국 불의와 배은망덕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을 비열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합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경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붙들고 계신 분께 감사를 돌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이성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은혜인데 그 은혜의 근원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사람에게는 의무를 다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은 훔쳐갑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합니까.

더 두려운 것은 이 경솔함이 종교적 열심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절기를 지켰습니다. 형식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역겨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각하는 마음, 돌아서는 심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지만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도 모임에 나오지만 죄는 버리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조롱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치셨고, 다시 초대하셨음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부르셨고, 징계로 깨우셨으며, 마침내 은혜로 초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이 있다면 그것이 단순한 불운일까요.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떼어내어 자기에게로 돌이키시려는 부르심은 아닐까요? 왜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결국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은 그분을 피하게 만듭니다. 침묵 속에서도 도망치게 만듭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타락입니다. 그것은 무한히 선하신 분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생각하라.” “돌이키라.” “내게로 오라.” 이것은 정죄의 외침이 아니라 슬픔에 젖은 사랑의 부름입니다. 경솔하게 살던 자여, 이제 멈추어 서십시오.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지혜이며, 가장 깊은 기쁨임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